[시론/남창희]‘전략적 유연성’ 반박할 때 아니다

  • 입력 2005년 3월 11일 18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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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군사관학교 졸업식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분명한 것은 우리의 의지와 관계없이 우리 국민이 동북아 분쟁에 휘말리는 일은 없다는 것”이라고 한 발언이 미묘한 반응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는 주한 미군이 대만 사태에 개입하더라도 한국이 원하지 않는 분쟁에 휘말리지는 않겠다는 뜻으로, 주한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과 관련해 한국의 대통령이 일종의 독트린 수준에서 제시한 원칙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중국은 우리에게 갈수록 중요해지는 무역상대국이자 6자회담 등에서 북한 핵 문제 해결에 중요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안보적 협력국이기도 하다. 최근 중국은 ‘반분열법’ 제정까지 추진하면서 대만 독립 가능성에 신경을 쓰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 정부가 대만 사태 등과 관련해 미중 갈등에 불필요하게 연루되지 않으려 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미군은 신속한 기동이 가능하도록 장비를 경량화하고 필요시 전력의 조합이 용이하도록 전 지구적 기지체계의 재편을 서두르고 있다. 전 세계 미군을 통합적으로 운용하려는 상황에서 주한 미군이 영원히 북한만 상대하고 있기를 기대하는 것은 우리의 과욕이다. 미국의 중대한 국익이 달린 대만 위기가 발생했을 때 주한 미군이 이를 모른 체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만일 한국 정부가 주한 미군의 대만 위기 개입 가능성을 차단하려 한다면 미국은 주한 미군의 존재 필요성 자체에 회의를 느낄 수 있다. 즉, 한국이 ‘연루’의 위험을 제기한다면 미국은 ‘동맹 포기’의 대응을 선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대통령 ‘미군’ 발언 미묘한 파장▼

한미동맹과 주한 미군은 6·25전쟁을 치르면서 우리가 미국에 특별히 요청하고 어렵게 설득하여 성사된 안보 자산이다. 소련의 팽창 위협이 소멸한 탈냉전기에 주한 미군의 전략적 가치는 주일 미군에 비해 계속 하락하고 있다.

한미동맹의 전략적 가치를 창출하고 유지하는 것은 우리 외교 당국이 챙겨야 할 중요한 국익 중 하나다. 만일 한미동맹이 붕괴되고 주한 미군이 사실상 철군하게 되면 한국은 북한의 오판 대상이 될 뿐 아니라 중국과 일본의 상호 영향력 경쟁의 대상이 될 공산이 크다. 이웃의 두 강국을 동시에 상대하기 위해 멀리 떨어진 미국의 힘을 활용하는 것은 동맹이론의 기본 공식이다. 한미동맹의 필요성에 대한 이러한 전략적 계산을 전제로 한다면, 대만 위기의 가능성을 앞에 두고 연루와 포기의 갈림길에서 어떠한 지혜를 발휘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는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이다.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북한 핵 문제가 엄존하고 김정일 체제의 불확실성이 남아 있는 상황에서 대만에 위기가 발생한다고 해서 주한 미군이 자동적으로 차출될 것으로는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주한 미군의 전력구조 자체가 아직 해상이나 공중기동을 할 수도 없으며 기본 임무는 여전히 북한의 남침을 격퇴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더욱이 대만 사태와 한반도는 완전히 별개의 전장이 아니고 미중 양국이 전략적 안목에서 상대의 전투력 분산을 기도할 경우 상호 연계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즉, 대만에서의 전면전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은 미군의 대응전력을 분산시키기 위해 중국이 한반도에서의 위기를 방치하는 정책의 전환을 낳을 수 있다.

▼가상상황 놓고 이견만 노출▼

그렇다면 만일 대만사태가 발생하였다 해도 주한 미군이 한반도를 비우는 것은 전략적으로도 사실상 비현실적인 것이다. 이런 점에서 아직까지는 개연성이 불투명한 미래상황을 염두에 두고 불필요하게 동맹국과 이견을 노출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생각된다. 아마도 정부는 미리 분명한 선을 긋고자 하였을 것으로 이해되지만 미국 정부가 이에 대응하여 추가 감군을 시사한다 해도 미군의 전반적인 슬림화 추세에 비추어 볼 때 놀라운 일은 아니다.

만일 전략선언 수준에서 동맹국간 이견이 해소되기 어렵다면 한국은 방위비 분담, 주한 미군 재배치, 전역미사일방어(TMD)체제 참여,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참여 등 실무 차원의 현안에 대해 선택적으로 미국 측의 이해관계를 배려하는 정책조정을 검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남창희 인하대 교수·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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