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황호택/五馬島

  • 입력 2004년 8월 24일 19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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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숨막히는 더위 뿐이더라/낯선 친구 만나면/우리들 문둥이끼리 반갑다…/버드나무 밑에서 지까다비를 벗으면/발가락이 또 한 개 없어졌다/앞으로 남은 두 개의 발가락이 잘릴 때까지/가도 가도 천리(千里), 먼 전라도 길’

‘천형(天刑)의 시인’ 한하운(1919∼1975)이 한센병에 걸려 고향 함경남도 함흥에서 전라남도 소록도까지 가는 여정을 그린 시다. 그가 남긴 ‘보리피리’ ‘전라도길-소록도 가는 길’ ‘파랑새’ 등은 지금도 교과서에 실려 사랑을 받는다.

▷한하운의 시편에는 ‘오마도’라는 시도 들어 있다. ‘문둥이들이/바다에 돌을 던져서…/ 육지 330만평의 5만석 옥토가 된/…살아서 마지막으로/학대(虐待)된 이름을 씻어/사람 구실 하는/오 영광의 땅/햇빛 가득한 오마(五馬)의 땅이여/어둠에서 빛나는 햇빛이여’ 한하운 시인이 소록도 병원의 부탁을 받고 오마도(전남 고흥군) 간척사업을 기념해 쓴 축시(祝詩)인 것 같다. 어느 시점에 시를 썼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오마도는 시구처럼 ‘영광의 땅’도 아니었고 ‘어둠에서 빛나는 햇빛’도 되지 못했다.

▷1962년 소록도 나병환자 2000여명이 정착촌을 짓겠다는 집념으로 뭉쳐 오마도 간척공사를 벌였다. 그러나 공화당 정권은 선거를 의식해 나환자들을 작업장에서 쫓아내고 사업권을 전라남도에 넘겼다. 나환자를 ‘사람 취급’하지 않던 시대에 벌어졌던 비극은 오마도뿐이 아니다. 광복 직후 소록도에서 나환자들의 폭동이 일어나자 치안유지대가 84명을 살해한 사건이 있었다. 1957년에는 삼천포 앞바다에 재활촌을 건설하려는 나환자들이 주민의 습격을 받아 23명이 사망했다.

▷대한변협은 오마도 사건의 진상을 밝히고 보상을 하는 내용의 법 제정을 국회에 요구할 방침이라고 한다. 40년이 지났더라도 오마도 사건처럼 잘못된 일은 바로잡혀야 하고 억울한 죽음은 신원(伸寃)해야 한다. 그러나 멈출 줄 모르는 회전목마에 올라탄 것 같은 어지럼증이 생긴다. 망국, 식민지, 분단, 전쟁, 군사독재의 현대사를 살아오면서 바다에 떠 있는 섬마다, 산하의 골짜기마다 억울한 죽음이 묻혀 있지 않은 곳이 어디 있으랴.

황호택 논설위원 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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