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정위용/'여당 대표를 감히' 라니

  • 입력 2003년 7월 15일 18시 2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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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시티에서 돈을 받은 정치인 중 민주당 정대철(鄭大哲) 대표와 김한길 전 의원이 각각 2억원과 500만원을 돌려주겠다고 밝혔다. 이들이 돌려줄 돈이 분양 사기 피해자들의 상처를 얼마만큼 보듬어 줄지는 알 수 없다.

정 대표 등은 피해자들의 빗발치는 원성과 비난을 피하고 법적 책임을 일부 면제받기 위해 돈을 돌려주겠다고 생각한 듯하다.

그러나 문제는 돈이 아니다. 돈은 언제든지 돌려줄 수 있겠지만 정 대표 등이 정치적 도덕성까지 ‘세탁’할 수는 없어 보인다. 이 사건은 굿모닝시티측의 사기 횡령 뇌물 등의 혐의가 복잡하게 얽히면서 다수의 피해자가 발생한 민생범죄이기 때문이다.

이 사건의 일차적 피해자는 투자했다가 분양도 받지 못하고 거액을 날려 버린 3000여명의 시민들이다. 이들이 투자한 돈은 굿모닝시티에 들어갔다가 대부분 증발해 버려 돌려받기도 불가능한 실정이다.

굿모닝시티 윤창열(尹彰烈) 회장처럼 편법이나 권력을 동원하지 못하고 각종 법 규정을 성실하게 지키며 상가를 지어 분양했던 서울 동대문 일대 경쟁업체들도 보이지 않는 피해자다.

그러나 이 사건의 가장 큰 피해자는 국민이다. 지도층 인사들이 뒷거래의 ‘반칙’을 저질러 ‘아랫물’까지 흐려질 경우 국민은 곳곳에서 뇌물을 주며 일을 처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세계 각국이 뇌물죄를 엄정하게 처벌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국가 기능의 공정성을 보호하기 위해 국내에서도 공직자의 뇌물죄는 ‘국가의 기강을 흔드는 국사범(國事犯)’으로 간주하고 있다.

고위 공직자가 부당한 청탁을 들어주고 ‘검은돈’을 받았다면 그 공직자를 반드시 뇌물죄로 처벌하는 것은 법치주의 국가의 상식이다. 송광수(宋光洙) 검찰총장이 15일 “뇌물에 관한 수사 자료가 있거나 의심이 갈 경우 대상을 가리지 않고 수사하는 것이 검찰 본연의 임무”라고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정 대표 등이 돈을 돌려주겠다는 것이 불법 행위에 따른 책임을 일부라도 면제받을 의도라면, 이는 졸렬한 발상이라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불법을 저지른 뒤 ‘돈만 반환하면 된다’는 식의 자세를 보이는 것은 오히려 사회의 부패와 부정을 조장할 수도 있다.

더구나 여당 일각에서 ‘여당의 대표를 감히…’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과거 검찰을 권력의 시녀로 여기던 독재정권 때의 사고방식을 그대로 갖고 있는 것 같아 씁쓸하다. 정치권이 시대의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는 실상을 목격하는 것 같은 느낌이다.

정위용 사회1부기자 viyon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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