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득헌의 스포츠세상]싸워도 원칙만은…

  • 입력 2001년 1월 15일 18시 41분


두 선수가 엉키더니 글러브를 벗어 던졌다. 그리고 주먹다짐. 심판들은 두 선수가 제풀에 꺾이기를 바라듯 다른 선수의 가세를 막았다. 좀처럼 그치지 않는 두 선수의 싸움. 웬일인가. 갑자기 링크의 불이 꺼졌다. 동시에 두 선수가 싸우는 곳에 원형의 조명이 집중됐다. 관중의 함성. 결국 두 선수는 툭툭 털고 일어나 각각 페널티 박스로 가기 시작했다.

오래 전 TV를 통해 본 미국의 아이스하키 경기 한 장면이었다.

들은 얘기를 덧붙이자면 집중조명에도 두 선수의 싸움이 길어지자 장내 스피커에서 미국의 국가가 나온 적도 있었다고 한다. 두 선수의 싸움이 즉각 끝난 건 당연했고.

올 시즌 아이스하키 경기를 한 게임도 관전하지 못했다. ‘그 게임은 꼭 봐야지’ 하던 예전의 마음은 아니지만 현대오일뱅커스가 한국리그 챔피언 결정전 이전까지 한 번도 꺾어보지 못했던 한라위니아를 3승1패로 몰아붙인 열전의 현장을 보지 못한 건 못내 아쉽다. 좋아하는데다 아이스하키와의 인연이 남다르다고 여기고 있어서이다.

시설이 괜찮은 링크가 곳곳에 있는 오늘의 기준으로는 링크로 불리기도 쑥스러울 정도겠지만 그래도 국내 유일의 경기장으로 사랑받던 동대문링크에서의 경기를 많이 보았다. 잠보니(빙판을 고르는 장비)가 없어 물구멍을 낸 철관과 천을 드럼통에 연결해 얼음을 평평하게 하던 시절이었다. 겨울철 여러 팀이 전지훈련지로 삼았던 산정호수도 몇 번 다녀왔다. 덕택에 1979년에는 한국팀 최초의 세계선수권대회 출전을 동행 취재하는 행운을 얻었다. 물론 한국팀이 생전 처음 경험하는 매끄러운 얼음판에서 무참히 패배하는 모습도 지켜보았다. 나로서는 첫 유럽여행이기도 했다. 인연은 또 있다. 돌아가신 장인도 둘째처남도 아이스하키선수였으니까.

얘기가 조금 빗나갔지만 미국 아이스하키 선수의 싸움과 심판 등의 경기운영은 그냥 ‘미국적 경기진행’이라고 웃어넘길 일이 아니다. 선수들은 정상적 플레이인 보디체크 문제나 다른 반칙 때문에 싸우게 되었겠지만 맨주먹(우리 선수들도 지금은 그렇게 한다)으로 맞선 이유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스틱 헤드기어 장갑 등의 사용에 따른 벌칙 때문이 아니라 감정폭발의 싸움을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발전시킬 수 없다는 점을 기본으로 삼는 탓이겠다. 심판이 그렇게 한 것은 당사자끼리 해결해 보라는 뜻일 터이고, 경기진행본부의 집중 조명과 국가 방송은 관중을 염두에 둔 경고일 것이다.

아이스하키 한국리그를 생각하다 미국의 경기 장면이 떠오르다니. 논리의 비약인지는 모르겠지만 기본이나 원칙을 헷갈리게 하는 우리의 요즘 세상 때문이 아닐까.

<논설위원·체육학박사>dhy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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