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조기숙/대통령의 리더십이 문제다

  • 입력 2000년 12월 5일 18시 41분


내가 초등학생이었을 때, 이승만대통령을 꼭 닮은 우리 할아버지의 별명은 이박사였다. 할아버지를 자랑스럽게 생각했던 내게 이대통령이 햐야했다는 사실은 충격이었다. 확실한 이유를 알고 싶었던 나는 만나는 사람마다 질문을 해댔다.

▼"언로가 막혀서"궁색한 변명▼

어른들의 답변은 한결같았다. 이기붕부통령이 온갖 부정을 저지르는 동안 이대통령은 아무 것도 몰랐다는 것이었다. 어린 마음에도 대통령이 어떻게 아무 것도 모를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대통령은 신문도 안보나? 하지만 어른들의 답변이 '국부 (國父)'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낸 궁여지책이라는 것을 알아차리는 데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갑자기 어린 시절의 기억이 떠오른 것은 그 때 많이 들었던 말이 요즘 다시 떠돌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잘하는데 밑에서 받쳐주는 사람이 없다." "언로가 막혀서 대통령이 민심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것 같다."

급기야 김대중대통령도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했는지 여론수렴에 적극 나섰다고 한다. 민주당 최고위원들과의 만찬에 이어 민주당 총재 특보단과도 만났다. 당4역도 만난다고 한다. 이런 보도를 접하며 어린 시절의 질문이 다시 떠올랐다. "대통령 특별기에는 신문도 안들어가나? "

대통령이 당직자를 직접 면담하지 않으면 여론 수렴이 안될 정도로 현재의 의사소통 구조에 문제가 있다는 것인가. 김대통령은 민심이 동요할 때마다 개각을 단행했지만 달라진 것은 별로 없었다. 이번에도 인물 몇을 바꾸고 당정쇄신을 꿈꾼다면 너무 안이한 대처가 될 것이다. 의사소통 구조의 어디에 문제가 있는지를 면밀히 검토해 확실히 정비하지 않는다면 남은 임기 동안에도 희망은 없어 보인다.

의사소통의 4대 요소는 말하는 사람, 듣는 사람, 메시지의 내용, 전달체계라고 할 수 있다. 메시지의 내용은 말하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최고위원들과의 면담내용이 함구에 부쳐진 것만 봐도 누구의 말을 청취하느냐는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꼭 내용이나 전달자에 문제가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 총재 특보단은 민심을 가감없이 대통령께 전했다고 하고, 대통령도 그 정도는 이미 신문을 통해서 다 알고 있다고 응답했다.

그렇다면 전달체계의 문제인가. 현 정부는 출범 전에 IMF 경제위기의 원인도 비판여론이 대통령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대통령에 대한 비판을 전담하는 조선시대 사간원과 같은 기구를 청와대에 설치할 방침이라고 발표했었다. 그런 체제만 갖춰졌다면 지금과 같은 위기를 피할 수 있었을까.

우리는 정보화 사회에 살고 있다. 조선시대처럼 사간원을 설치하지 않아도, 당직자를 면담하지 않아도 대통령이 뜻만 있으면 알건 다 알 수 있는 열린 시대다. 그럼 무엇이 문제인가. 말하는 사람도, 메시지도, 전달체계도 문제가 아니라면 결국 듣는 사람에게 문제가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사실 듣는 사람이 누구에게서 무슨 말을 들을 것인지도 결정한다.

총재 특보들과의 대화에 나타난 바로는 김대통령은 언론이 위기를 과장하고 있다고 느끼며, 개혁을 하려면 이 정도의 불만은 감수해야 한다고 인식하는 것으로 보인다. 결국 듣기 위한 자리였다기보다는 질책성 당부를 하려는 것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마저 든다.

▼능력있는 사람 키우는 게 리더▼

어른이 된 지금, 나는 어렸을 때의 어른들처럼 언로가 막혀서 그렇다는 궁색한 변명을 아이들에게 하고 싶지는 않다. 김대통령이 위기를 맞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김대통령 자신의 리더십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진정한 리더는 리더를 키울 줄 아는 사람이다. 리더십의 요체는 아랫사람에게 권력을 주는 것에 있다. 아무리 머리가 우수해도 손발이 하는 일을 머리가 할 수는 없다. 능력 있는 사람을 선발해 마음껏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바람막이가 돼주는 것이 바로 리더가 할 일이다. 관리형 인사의 전진배치로 리더십이 있는 정치인의 중용을 피해온 김대통령의 인사스타일을 되돌아볼 때다.

세종대왕이 위대한 성군이 될 수 있었던 것은 황희, 맹사성 같은 훌륭한 신하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제갈공명도 혼자서는 독불장군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대통령만 모르는 것 같아 안타깝다.

조기숙(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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