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구로공단, 굴뚝단지가 벤처요람 됐어요"

  • 입력 2000년 11월 15일 18시 57분


코멘트
《21일 ‘한강의 기적’을 일궈온구로공단의 간판도 36년 만에 내려진다. 대신 ‘서울디지털산업단지’라는 산뜻한 새 이름이 등장한다. 90년대 중반부터 구로공단에 벤처기업들이 조금씩 몰려들면서 현재 입주업체 600여개 중 절반이상이 첨단 업종으로 바뀌었다.새 간판 선포식이 오히려 뒤늦은감이 없지 않다. 》

“이제 옛 ‘구로공단’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게 됐지. 세월이 참 많이 변했어.”

서울 구로구 구로동에서 구로공단의 부침(浮沈)을 20년 넘게 지켜 본 기계공구상가 ‘금룡상사’의 김용만사장(61)은 요즘 새삼 감회에 젖는다.

아직도 10평 남짓한 가게에서 온갖 기계공구를 팔고 있는 그가 구로동을 처음 찾은 것은 20여년 전.

새로운 공구상가를 만들어보리라 마음먹고 동료 7명과 함께 이곳 구로역 부근의 문을 두드렸다.

“영등포시장 부근의 터무니없이 비싼 임대료에 버틸 수가 있어야지. 동료들과 ‘내 점포 갖기 운동’을 벌였을 당시 이곳은 허허벌판에다 냄새나는 늪지로 가득찼었어.”

밀가루와 건빵을 만들던 공장들을 사들여 이들은 기계공구상가 회원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이들이 주축이 된 ‘구로기계공구상가’에 수 백명의 회원이 동참했고 81년부터 지금의 윤곽을 갖추게 됐다.

이에 자극받은 상인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해 지금 이곳은 7개 대형 상가가 밀집한 ‘공구타운’으로 비약적 발전을 이뤘다. 현재 밀집된 점포 수만 총 9435개. 하루 거래액도 수십억원에 이를 정도다.

인접한 구로공단이 70, 80년대 수출의 메카로 ‘잘 나갈 때’ 김사장의 사업도 순풍에 돛 단 배처럼 순항했다. 구로공단에 입주한 기업들의 주문이 연일 몰려들었기 때문. 그러나 구로동의 ‘황금기’는 80년대 후반부터 내리막길로 접어들었다. 더 이상 ‘굴뚝산업’으로는 급변하는 무한 경쟁시대를 헤쳐나갈 수 없다는 현실에 부닥친 것이다. 위기상황을 맞아 공구상인들은 허리띠를 졸라맸다. 경상경비를 줄이는 동시에 탄탄한 유통망과 기존 거래선을 밑거름 삼아 재도약에 나선 것.

유통망은 구로공단에서 벗어나 전국으로 확대됐다. 산업용품 단지로 세계 최대 규모라는 명성에 걸맞게 외국인들의 발길도 이어지고 있다.

의정부에서 소규모 공장을 운영 중인 김정호씨(50)는 “다양한 물품을 한 곳에서 구입할 수 있어 이곳을 자주 찾는다”며 “품목별 분류도 잘 돼 있어 편리하다”고 말했다.

공구상가 주변의 ‘지형도’도 변하고 있다. 최근 확정된 구로역과 신도림역 일대 지구단위계획에 따라 이 일대 32만4000여평이 기능별로 특화된 신도시로 거듭나는 발판이 마련된 것. 특히 이 구역 안에 있던 종근당 삼영화학 조흥화학 한국타이어 등 ‘굴뚝공장’의 부지들이 새로운 아파트 단지로 탈바꿈하고 있다.

“구로동의 산 증인으로 벤처단지가 들어서고 거리가 바뀌는 것을 보니 뿌듯해. 허허벌판이 변화의 중심에 선 것 자체가 자랑스러운 일이지….”

어느새 김씨의 시선은 구로동의 하늘로 향하고 있었다.

<정연욱·송홍근기자>jyw11@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