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국민만 죽어나야 하나

  • 입력 2000년 6월 18일 18시 46분


정부가 어제 오전 ‘의약분업 관계부처 긴급대책회의’를 갖고 보완책을 내놓았으나 의사측의 반응은 냉담하다고 한다. 오늘 안으로 극적인 타협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내일부터 전국규모의 ‘의료대란’이 불가피한 실정이다.

정부는 일단 7월1일부터 의약분업을 실시하고 3∼6개월 시행결과를 평가해 문제점이 나오면 관계법을 개정하는 등 보완하자는 입장이다. 그러나 의료계는 그런 정도로는 기왕에 예고한 폐업투쟁에서 한발짝도 물러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의료계는 현 정부의 의약분업안은 ‘잘못된 의약분업’이라고 주장한다. 기본적으로 약사의 진료행위와 임의조제가 근절될 수 없는 현실에서는 의약분업의 최고목표인 약의 오남용 방지를 기대하기 어려우며 그럴 경우 의료소비자인 국민의 불편만 가중될 뿐 국민건강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부는 지금의 의약분업 시행 방안이 지난해 5월 시민단체 중재 하에 의사협회와 약사회가 합의한 내용으로 당초 99년 7월부터 시행키로 했다가 1년을 연기한 입법사항이어서 다시 연기하거나 없던 일로 할 수 없다는 기본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또한 약사의 임의조제 금지나 약화사고 책임문제 등 의사측이 요구하는 주장의 대부분을 이미 들어주었거나 시행 후 보완할 예정이므로 의사측의 폐업에 대해서는 법적 대응을 취할 수밖에 없다고 경고한다.

우리는 지금 정부와 의료계 주장 중 어느 쪽이 옳고 그른지 새삼스레 따질 생각은 없다. 그럴 경황도 아니다. 문제는 정부와 의료계의 극단적인 대립으로 결국 죽어나는 것은 국민뿐이라는 사실이다. 벌써부터 수술을 받아야 할 환자들이 수술을 받지 못하거나 수술일자가 미뤄져 환자와 가족들이 고통받고 있다는 보도다. 이러다간 환자가 생명을 잃는 최악의 사태마저 일어나지 않을지 두렵다.

의료계에 당부한다. 의약분업에 대한 주장이 어떠하든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볼모로 하는 투쟁방식은 결국 ‘진정한 국민건강을 위해 투쟁한다’는 명분에도 맞지 않는다. 어떤 이유로도 수술이나 진료가 지연돼서는 안 된다.

정부는 의료대란에 대비한 응급대책에 최선을 다할 것으로 믿는다. 그러나 응급대책만으로는 최악의 사태를 막을 수 없다면 이런 상태에서 의약분업을 강행하는 것이 과연 최선의 선택인지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의료계건 정부건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버티기’를 하는 것은 안 된다. 환자들이 생명을 잃는 사태가 생긴 후에 책임공방을 벌여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