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권순활/ "정부-재계 감정싸움에…"

  • 입력 2000년 4월 24일 19시 26분


며칠전 기업 임원 2명을 각각 만나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재벌개혁’을 둘러싼 정부와 재계의 갈등이 첨예해지던 때라 이 문제로 화제를 옮겨갔다. 이들은 정부의 ‘전방위 압박’의 표적이 아닌 회사에 몸담고 있어 한발 떨어져 사태를 바라보는 입장이었다.

두 사람은 사태악화의 핵심이유로 ‘정부와 재계간의 상호불신과 물밑대화의 부재’를 들었다. K이사는 “재벌개혁이란 명분(정부)과 경영현실에서의 효율(재계)간의 논리적 대립도 있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감정싸움 성격이 더 큰 것 같다”고 말했다. 공감이 가는 지적이었다.

현재 진행되는 정부와 재계의 ‘기싸움’은 전례가 드물다. 정부는 국세청과 공정거래위원회 등을 총동원해 한 기업도 아니고 상당수 그룹에 대한 전면적인 압박에 나섰다. 재계도 2년여간 숨죽이고 지내던 분위기와 달리 정부에 대한 강도높은 불만을 털어놓고 있다.

좀 심하게 표현하면 정부측은 재벌총수 일가의 변칙증여 등을 들어 재계를 ‘범죄집단’쯤으로 백안시한다. 재계는 외국기업에 대한 정부의 ‘환심사기’와 비교해 “도대체 어느 나라 정부냐”며 볼멘 표정이다.

정부와 재계간 갈등이 표출될 때 이견을 물밑에서 조율하는 창구가 없는 것이 문제를 더 꼬이게 한다. 현정부 출범후 사회전반적 역학관계에 큰 변화가 생기면서 재계를 설득할 만한 정부측 인사가 드물다. 재계에서도 이런저런 사정으로 대정부 관계에서 중재역을 맡을 사람이 없거나 고사하는 실정이다. 이러다 보니 양측의 감정대립이 걸러지지 않고 증폭되면서 어느 나라에서도 보기 어려운 정면충돌로 이어졌다.

정부와 재계의 갈등심화가 국민경제에 악영향을 초래한다는 것은 명백하다. 이런 측면에서 우선 서로 허심탄회한 입장전달을 가능케 하는 ‘막후 대화채널’을 만들면 어떨까. 양측의 ‘고래싸움’이 해당기업 직원을 포함한 애꿎은 국민의 피해로 이어지는 일을 막기 위해서라도….

<권순활기자>shk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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