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득헌의 스포츠 세상]승리로 가는 또 다른 길

  • 입력 2000년 4월 24일 18시 29분


프로야구단 해태의 김응룡 감독. 최근 2000경기 출장에 1100승의 대기록을 세운 그의 말이 차분하게 가슴에 다가선다. 그는 “감독은 흐름을 잡아주면 되고, 경기는 선수가 한다. 83년 이래 꿋꿋이 버티며 한국시리즈 9회 우승을 일군 것은 좋은 선수를 만났기 때문이다”고 했다. 그러나 그 말은 감독론 총론일 것이다.

문제는 흐름을 잡는 일이다. 흐름을 잡는 일은 출전선수 선정이나 경기 중 작전지시만을 뜻하는 게 아니다. 좋은 선수들의 기량을 최선으로 이끌고, 또 그들을 한마음으로 묶는 것도 당연히 그에 포함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잡는가. 바로 그것이 스포츠 감독의 역할이며 또 생존전략이다.

감독의 생존전략은 결국 승리이다. 승리는 선수들이 추구하는 목표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향목표가 같다고 해서 감독과 선수가 마음이 항상 하나가 되는 것은 아니다. 특히 감독이 아이젠하워 타입으로 불리는 민주주의형이 아닌 패튼 타입으로 불리는 권위주의형일 경우는 감독과 선수의 갈등은 깊어진다. 혹사당하지 않으면서 좋은 경력을 쌓고 싶어하는 게 선수의 심리이기 때문이다.

감독은 두 가지 형태를 혼합해 나름대로 승리전략을 세우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나는 철저한 민주주의형 감독의 성공도 주목해야 한다고 믿는다. 1960년대 미국 고교의 미식축구 감독이었던 조지 데이비스. 그가 여전히 회자되는 이유는 그가 한동안 세운 무패의 기록이 독특한 선수기용에서 비롯됐다는 점 때문이다. 의아스럽겠지만 그는 경기를 앞두고 주전선수를 선수들의 투표로 결정했다.

그의 말은 이렇다. 미식축구에서 젊은이를 깨닫게 하는 최선의 방법은 팀 내 민주주의이다. 누구든 최선을 다할 수 있는 것을 찾아 그것과 다른 사람이 잘 할 수 있는 것을 엮으면 우리는 승리한다. 그리고 생활은 넉넉해진다. 블로커가 잘하면 할수록 하프백이 더 잘 달릴 수 있는 것이다. 누구든 역할을 갖고 있어 감히 피하지 않는다. 젊은 선수들에게는 동기 부여가 중요한데 그들이 누구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인가. 감독이나 권위인가. 결코 아니다.

그는 프로팀에서도 투표로 주전선수를 결정해 볼 것을 권고했다. 감독이 선수들의 견해를 꼭 수용할 필요는 없지만, 결과를 통해 적어도 선수들의 생각을 알게 된다고 강조했다. 또한 선수들은 동료의식과 자각에 따라 감독이 생각하는 이상으로 충실히 활동하게 되며, 팀 단결력과 신뢰감이 높아진다고 했다. 데이비스 감독의 민주주의는 비단 스포츠세계에서만 주목할 일은 아니다. 국민의 승리를 이끌어내야 할 정치의 지도자, 정당의 감독들도 음미해볼 만하지 않은가.

윤득헌〈논설위원·이학(체육학)박사〉dhyoon@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