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시대의 큰 흐름 직시해야

  • 입력 2000년 1월 12일 19시 02분


이제 시민단체가 정치를 개혁하겠다고 나섰다. 부패하고 무능한 정치인, 개혁에 따른 국민의 고통과 희생은 나 몰라라 하며 자신의 기득권만 지키려는 정치인, 지역감정을 조장하고 저질발언이나 일삼는 정치인 등을 유권자의 이름으로 정치무대에서 퇴출시키겠다는 것이다. 특정 정치인에 대한 낙선운동까지 불사하겠다는 시민단체의 움직임이 옳고 그르냐를 떠나 이는 정치도 달라져야 한다는 국민의 강렬한 변화욕구이자 거역할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에 이어 어제 400여 시민단체가 손잡은 ‘2000총선시민연대’가 ‘유권자 심판운동’을 선언하고 나선 것은 결국 현 여야(與野) 정치권의 자업자득(自業自得)이다.

지난 2년 동안 그들은 입으로는 정치개혁을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거의 아무 개혁도 하지 않았다. 공동여당은 내각제와 합당 문제를 놓고 지루한 소모전만 벌였을 뿐이고, 야당은 여당의 탄압에 맞선다며 목소리만 높였지 실속있는 대여(對與)투쟁을 벌이지 못했다. 정치권은 정치개혁의 근본과제인 정당의 민주화는 고사하고 고비용 저효율 정치의 개선책으로 내놓았던 국회의원 정수 줄이기 등 일부 표면적인 개혁조치들조차 슬그머니 철회했다. 그러면서도 의원 세비는 두자릿수로 인상했다. 의원수 줄이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의원 세비도 올릴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국민의 눈에 ‘자기들 잇속차리기’만으로 비치지 않게 하려면 적어도 개혁의 몸짓이나마 보여야 했다.

그러나 총선이 임박하면서 정치권이 보이는 것은 여전히 불투명한 밀실공천이고, 선거관계법 협상과정을 보면 기득권 유지에만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다. 당리당략에 매인 여야간 정쟁으로 수많은 민생 개혁법안들이 휴지가 돼버렸다. 정치권의 자기 개혁을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다면 유권자인 시민이 나서 개혁시킬 수밖에 없다. 지금 불붙고 있는 시민단체의 ‘선거운동’은 이러한 국민적 공감대 위에 서있는 것이다. 여야 정치권은 이러한 거대한 흐름을 직시해야 한다.

그같은 흐름을 주도하고 있는 시민단체들은 무엇보다 운동의 공정성 객관성 합리성을 갖춰야 한다. 예컨대 경실련의 ‘공천부적격자 명단’에 꼭 들어가야 할 사람 몇몇이 빠진 것을 두고 뒷말이 많은 것이 단적인 예다. 또한 하나의 잣대로 모든 것을 재단하려는 ‘오만과 독선’을 경계하는 소리에도 귀기울여야 한다. 국회의원의 정책판단에 대해 신중한 견해표명보다 단죄하는 듯한 입장을 밝히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시민단체 운동의 큰뜻은 옳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민주주의와 법치의 큰 틀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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