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재홍/주혜란씨의 「힘」

  • 입력 1999년 7월 18일 18시 39분


동양과 서양의 부부관은 꽤나 다르다. 우리는 수신제가(修身齊家)라는 말로 가장인 남편의 무한책임을 따지는 문화다. 그러나 서양에서는 부부가 재산도 따로 관리하는 것을 당연시한다. 유럽보다는 미국쪽이 더 심하다. 부부간에 공동 생활비와 개인적 용돈, 은행통장이 각각 분리돼 있는 게 보통이다. 우리도 신세대의 경우 많이 달라졌다지만 아직은 ‘딴 주머니 찼다’는 말이 좋게 들리지는 않는다.

▽동서양 부부관의 차이는 문인들의 작품에도 잘 배어 있다. “부부는 인륜의 근본이요, 나라가 다스려지고 어지러워짐이 다 이에서 연유한다(夫婦人倫之本也 國家理亂 罔不由之)”. 고려말 재상이며 문필가였던 이제현(李齊賢)의 익제난고(益齊亂藁)에 담긴 말이다. 요즘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책이 베스트 셀러라는데 웬 유학자의 도덕론이냐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는 우리 비평문학사에 중요한 인물이어서 일반 유학자들과 다른 측면을 인정받고 있다.

▽“역시 당신의 아내를 부드럽게 대하지 마시오. 당신이 아는 모든 것을 그녀에게 다 말하지 말며 한두가지만을 일러주고 다른 한 가지는 감추어 두시오.” 서양문학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작품 중 하나인 호머의 오디세이에 나오는 구절이다. 우리가 서양의 부부관을 비판하면 그들은 삼강오륜 중 ‘부부유별(夫婦有別)’이란 말을 들어 역공한다. 그러나 부부유별은 역할분담이란 뜻에 더 가깝다.

▽임창열(林昌烈)경기지사와 그의 부인 주혜란(朱惠蘭)씨가 경기은행측 뇌물을 받은 줄 서로 몰랐을까를 두고 말들이 많다. 주씨는 남편에게 말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주씨가 받은 돈은 4억원인데 비해 임지사는 1억원이어서 이 차이가 세간의 화제다. 시중에서는 ‘임 지사의 부인 주씨’보다는 ‘주씨의 남편 임 지사’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고 입방아들이다. 로비의 속성상 힘이 더 있는 쪽에 돈도 더 가기 마련이다. 그녀의 힘이 어디서 나왔는지가 궁금하다.

김재홍<논설위원>nieman96@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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