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영화]「암살자(들)」/TV속 숨은 폭력성 정면고발

  • 입력 1999년 5월 16일 20시 04분


4월 미국 콜로라도주 콜럼바인고교의 총기난사 사건으로 세계를 경악시킨 두명의 고교생. 이들은 10대의 이유없는 살상을 그린 영화 ‘내추럴 본 킬러’를 20여차례나 봤다고 한다. 범행 당시 입었던 트렌치 코트 역시 폭력영화인 ‘헤더스’의 주인공 크리스찬 슬레이터의 모습과 비슷하다는 분석도 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미 상원에서 TV폭력프로의 방영을 제한하는 법안이 제출됐고 빌 클린턴 미국대통령은 연예산업 관계자들을 불러 폭력적 영화 비디오를청소년에게팔지말라고 촉구했다.

22일 개봉되는 마티유 카소비츠감독의 ‘암살자(들)’은 이같은 사건을 예견한듯 영상물 특히 TV의 폭력성을 정면으로 고발,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가업으로 물려받은 ‘킬러’라는 직업을 40년째 지키고 있는 노장 바그너(미셀 세로 분). 그의 후계자로 열세살짜리, 그러나 이미 ‘막가는’ 인생을 시작한 소년 메디(메디 베느바)가 간택된다.

노장은 프로답게 살인기술과 윤리를 전수하려 하지만 미안하게도 메디가 한 수 위다. X세대 소년에게 사람을 죽인다는 것은 좋아하는 비디오 게임만큼이나 식은 죽 먹기이기 때문. 어느날 바그너가 보고 있는 TV에서 소년이 학교교사에게 총질을 해댔다는 뉴스가 전해지는데….

콜럼바인고교 사건을 그대로 연상케하지만 이 영화는 97년 완성됐다. 그 자신이 ‘내추럴 본 시네마 키드’였던 마티유 카소비츠 감독은 “우리 사회는 폭력으로 물들어 있으며 그 폭력의 근원은 TV”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95년 데뷔작 ‘증오’로 스물일곱살의 나이에 칸 영화제 감독상을 거머쥐었던 그가 ‘암살자(들)’로 미디어의 폭력성, 현대문명의 야수성에 비수를 들고 나선 것이다.

X세대 킬러인 어린 주인공의 태도에서 볼 수 있듯 이 영화에서 TV의 이미지는 ‘폭력의 이미지를 마구마구 생산해내는 제도화된 범죄집단’이다. 그 앞에서 리모컨 버튼을 눌러대는 인간 킬러는 TV에 비하면 아마추어 암살자에 불과하다. 이 영화 제목이 ‘암살자’가 아니고 ‘암살자(들)’인 것도 TV를 또하나의 암살자로 꼽으려는 감독의 의도 때문이다.

영화는 관객의 심기가 불편해질만큼 처음부터 끝까지 폭력적이다. 그러면서도 팽팽한 도전의식, 메스로 썩은 부분을 도려낼 때 느껴지는 해방감이 담겨있어 역겹지 않다.

올초 미국 대법원은 ‘내추럴 본 킬러’의 올리버 스톤감독과 제작사에 대해 “범죄를 부추겼으므로 책임지고 피해자에게 보상하라”고 판결했다. 인간이 만든 영상과 미디어가 거꾸로 인간을 죽여대는 현실. 이제 영화가, TV가 인간에게 책임을 질 차례인가.

〈김갑식기자〉g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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