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미완의 '銃風'수사

  • 입력 1998년 10월 26일 19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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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총풍(銃風)사건’에 대한 검찰의 중간수사 결과가 발표됐다. 검찰은 전직 청와대 행정관 등 3명의 총격요청 사실을 밝혀내고 그들을 국가보안법상 회합 통신죄로 기소했다. 적용된 죄목이 여권에서 거론됐던 외환(外患)유치죄보다 훨씬 가볍다. 특히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나 동생 회성(會晟)씨의 관련혐의가 밝혀지지 않았다. 검찰이 회성씨의 인지 여부 등 배후수사를 계속하겠다니 지켜봐야겠으나 그동안 우리 사회가 떠들썩했던 것에 비하면 용두사미에 가깝다.

사건배후에 대한 검찰의 어정쩡한 발표는 여야의 정치공방을 재연시키고 있다. 연립여당은 이총재가 정치적 도의적 책임을 면할 수 없다며 사과를 요구한 반면 한나라당은 국민회의와 안기부가 사건을 조작했다며 책임자 퇴진을 주장하고 나섰다. 수사발표가 정쟁을 종식시키지 못하고 불씨를 되살린 셈이 됐다. 사건의 성격상 수사에 장애가 많았으리라고는 짐작한다. 그럼에도 검찰이 수사에 엄정하게 최선을 다했는지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동안 수사를 어렵게 만든 주된 요인은 여야의 무절제한 정치공방에 있다. 여야는 사건을 멋대로 확대 또는 축소해 뒤죽박죽으로 만들었다. 그 일차적 책임은 여권이 져야 한다. 여권은 처음부터 한나라당 지도부가 개입한 것처럼 예단하고 이총재의 퇴출과 정계은퇴까지 요구했다. 피의자들을 외환유치죄로 단죄하기도 했다. 그런 태도가 정쟁의 악순환을 불렀고 수사의 진전을 방해하게 됐다. 물론 한나라당이 ‘총격 요청’ 자체마저 고문에 의한 조작이라며 사건 전체를 부정한 것도 옳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안기부도 비판받아 마땅하다. 안기부가 정치개입 의도를 갖고 조사에 착수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여야공방에 끼여들어 결과적으로 정치에 개입했다. 피의자 고문 여부가 전문기관의 판단에 맡겨진 단계에서 안기부가 ‘자작극 가능성’을 발표한 것도 또다른 개입이다. 일련의 처사는 안기부의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의문을 낳았다. 안기부는 적절히 해명하고 시정조치를 취해야 할 것으로 본다.

중간수사결과만으로 사건을 가볍게 넘길 일은 아니다. 배후 유무는 아직 단정할 단계가 아니다. 따라서 ‘3인의 불장난’에 불과하다는 일부의 시각은 잘못이다. 설령 배후가 없다 하더라도 청와대 중간관리와 대북사업자들이 그런 일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사태는 역시 중대하다. 검찰은 철저한 보강수사를 통해 시비소지가 없도록 전모를 밝혀내야 한다. 법원은 고문 유무를 조속히 판정하기 바란다. 정치권 또한 진실규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지나친 정쟁을 자제해야 옳다. 문제의 핵심은 여전히 실체적 진실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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