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준칼럼]「미래의 50년」 비전 밝힐때

입력 1998-08-07 19:25수정 2009-09-25 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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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곧 대한민국 건국 50주년, 그리고 한반도 분단 50주년을 맞이한다. 48년 8월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때로부터 어언 반세기가 흘렀고 대한민국 정부의 수립에 이어 48년 9월9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수립됨으로써 한반도에 서로 대결하는 분단국가체제가 성립된 때로부터 역시 반세기가 흐른 것이다.

돌이켜 보면 대한민국 건국은 그 자체가 글자 그대로 가시밭길의 역정이었다. 국제적 동서냉전과 국내적 좌우투쟁이 어우러져 만들어낸 해방 3년의 특이한 공간에서 그래도 ‘단독정부 수립 불가론’을 물리친 채 대한민국을 세운 것은 장한 일이었다. 뒷날 공개된구(舊)소련자료들이 말해주듯 그때 만일 그 길을 밟지 않았더라면 한반도 전체는 공산화됐을 개연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 영욕의 건국50년사 ▼

그 뒤에도 대한민국이 걸었던 길은 시련의 연속이었다. 37개월에 걸쳐 동족상잔을 겪어야 했고 오늘날까지 그것이 남겨놓은 멍에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채 북한과 군비경쟁을 계속하고 있다. 그것뿐인가. 얼마나 잦게 정변(政變)을 경험했으며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고귀한 인명이 희생돼야 했던가. 게다가 불과 30여년 전까지만 해도 ‘아시아의 최빈국(最貧國)’ 또는 ‘거지 근성의 나라’라는 조롱을 받았을 정도로 가난을 천형(天刑)처럼 여기며 살지 않았던가. 다른 한편으로 역경에도 굴하지 않고, 한때는 ‘한강변의 기적’을 이룩하고 서울올림픽을 성공시켰던 것은 대한민국 50년사의 빛나는 성취들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막상 대한민국 건국 50주년의 이 시점에서 보는 조국의 현실은 어둡기만 하다. ‘국제통화기금(IMF) 신탁통치 시대’라는 말에 압축되어 있듯 우리나라는 50년전에 겨우 되찾은 주권의 중요한 부분을 제약받고 있는 가운데 산업기반의 붕괴와 기업의 도산사태 및 실업자의 대량발생 속에서 많은 국민이 불안심리와 좌절감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북한은 북한대로 국가적 파산 상황에서 ‘정권 창건’ 50주년을 맞이하게 된다. 한반도 평화통일의 전망도 밝지 않다.

▼ 이스라엘 성공과 대비 ▼

남북한의 현 상황은 4월 30일의 이스라엘 건국 50주년과 크게 대조된다. 유태인의 국제적 홍보 노력의 산물이기도 했지만 이스라엘 건국 50주년은 신생독립국가의 대표적 성공사례로 국제적 조명을 받았다. 유태인의 우수성이 아울러 다시 한번 부각됐다. 내년에는 또 두 나라가 건국 50주년을 화려하게 맞이하게 된다. 49년 5월23일에 건국한 독일연방공화국(구 서독)은 이미 선진 민주복지국가의 반열에 올라섰을 뿐만 아니라 8년 전에는 동독을 흡수해 통일의 대업마저 성취했고 국제사회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49년 10월1일에 건국한 중화인민공화국은 아시아의 최강국으로 떠오르는 가운데 이미 홍콩을 반환받았고 곧 마카오도 돌려받게 된다. 21세기 초에는 미국의 경제력을 앞설 것이라는 예측이 이제는 보편화했다.

세계정치학계와 국제언론은 이 네 나라의 성패를 비교하는 일에 이미 착수했다. 내년쯤 우리는 그러한 비교와 관련해 적지 않은 연구업적들을 대하게 될 것이다. 영국의 고전적 정치사상가 토머스 홉스는 그의 ‘국가론’에서 어떤 사람에게나 다른 사람에 비교되는 고통만큼 큰 고통은 없다고 갈파한 바 있다. 우리는 이제 성공 사례로서의 이스라엘 독일 중국과 비교되면서 실패 사례로 비웃음당하는 고통마저 겪게 됐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의 스테이트크래프트(Statecraft), 즉 국가경영 기술의 실패가 어디에서 연유한 것인지 따져보게 된다. 제도의 잘못인가, 사람의 잘못인가, 아니면 두 가지가 겹친 것인가. 정부가 ‘제2의 건국’을 외치는 이 마당에 우선 냉정하게 따져보아야 할 문제다. 더구나 매일같이 정치권의 구조적 무능과 부패의 진상에 접하게 되면서 제도와 사람 모두에 결정적 잘못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문제의식이 절박해진다.

▼ 총체적 개혁 이뤄야 ▼

바야흐로 세계화의 파도가 지구 전체를 뒤엎으려는 기세를 떨치는 가운데 미국 중심의 세계자본주의가 전세계를 단일시장으로 만들어가고자 ‘제국주의적 힘’을 발휘하고 있다. 이것은 그렇지 않아도 이미 국가경영에 실패한 우리에게 처절한 자기개혁을 통한 민족적 소생을 촉구하는 새로운 외압이기도 하다. 가까이로 정치제도와 정치지도세력 모두에서 개혁을 이룩하지 못한다면 ‘제2의 건국’은 안타깝게도 공염불로 끝날 것이다. 낡은 제도와 낡은 사람이 ‘퇴출’당할 때 비로소 ‘제2의 건국’에 대한 비전은 마련될 수 있다는 뜻이다.

김학준〈인천대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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