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한-러관계 손상 안되게

  • 입력 1998년 7월 6일 19시 56분


러시아 정부가 우리 외교관을 기피인물로 규정하고 일방적으로 본국송환을 통보한 것은 국제사회의 외교관례에 어긋난다. 사실상의 추방조치를 하면서 사전협의 한번 없었다. 90년 한소(韓蘇)수교 이후 발전돼 온 양국간 우호협력관계가 무력하다는 느낌마저 지울 수 없다.

러시아 연방보안국(FSB)이 우리 외교관을 연행해 2시간 동안 억류 조사한 것은 명백한 빈협약 위반이다. 러시아측은 우리 외교관의 활동내용도 언론에 사전공개했다. 두가지 모두 지극히 비우호적인 조치로 진상조사 결과를 떠나 러시아 당국에 유감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FSB는 러시아 외무부의 아주담당 부국장이 한국의 첩보기관에 포섭돼 오랫동안 활동해 왔다며 그를 체포해 조사중이다. 한국외교관이 그에게 상당기간 금품을 주면서 기밀문서를 빼냈다는 것이 러시아 당국의 주장이라고 한다. 냉전시대 비우호국 간에 종종 일어났던 스파이사건을 연상시킨다. 당시에는 자국의 국익증진을 위한 외교관 활동이 주재국의 국가기밀을 침범했다는 시비를 일으킨 일이 흔했다. 그러나 외교관의 통상적인 정보수집은 허물이 안된다. 더구나 이번 사건이 러시아 외무부와 FSB간의 상호견제 과정에서 불거졌다는 풀이도 있어 더욱 석연치 않다.

러시아는 한소수교 이후 한국과 두터운 경제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한국이 러시아에 제공한 30억달러 차관중 남은 12억달러는 군사장비 등으로 상환하기로 돼있다. 한국은 러시아에 대한 국제채권단인 파리클럽보다 우호적인 조건으로 차관을 상환받을 계획이다. 양국의 연간 수출입총액도 33억달러에 이른다. 한국의 무역상대국중 규모는 20위에 머물러 있지만 앞으로 천연자원의 공동개발 등 잠재적 경협확대 가능성은 매우 크다.

이처럼 경협관계로 다져진 한―러관계는 그동안 한반도주변 정치안보 협력문제에서도 의미있는 축으로 작용해온 것이 사실이다. 러시아는 4자회담에서 빠졌지만 한국의 이 외교과제에 지지를 표명하면서 별도로 한반도관련 국제회의를 제안하기도 했다. 마침 김대중(金大中)정부는 4자회담 재개와 함께 더 넓은 한반도관련 다국안보체제를 모색하는 분위기다.

이같은 한―러관계 전반에 비추어 보면 이번 러시아의 외교관추방 조치는 돌출적인 성격이 짙다. 상호 문화가 달라서 오해가 빚어졌다면 충분히 해명돼야 하겠지만 러시아측의 과잉행위가 발견될 경우 당연히 외교적인 상응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 지금은 대립이 아니라 협력의 시대다. 양국 정부는 진상을 신중히 가리되 이것이 전반적인 양국관계에 손상을 입히지 않도록 사건을 분리해서 처리하는 지혜를 발휘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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