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대통령과 재벌의 약속

  • 입력 1998년 7월 5일 19시 54분


김대중대통령과 전경련 회장단이 빅딜의 조기성사 등 9개항의 경제현안에 합의한 것은 경제난국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번 합의는 정부와 기업이 서로 의무와 책임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김대통령과 전경련 회장단의 모임은 현정부 출범 후 처음있는 일이다. 김대통령의 말대로 항간에는 정부와 대기업간에 상당한 갈등이 있는 것처럼 비쳐져 왔기 때문에 이번 대화는 그같은 불안을 불식시켰다는 차원에서 모임 자체가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최근 재계는 정부의 현실성없는 경제정책이 기업활동의 장애가 된다고 불만을 나타냈던 것이 사실이다. 기업실정을 무시한 정책때문에 시장경제 논리가 무너지고 그 결과 기업의 경영개선 노력과 외자유치가 더 어려워졌다고 불평해 왔다. 그런 점에서 국정 최고 책임자가 직접 실물경제 현장의 소리를 듣는다는 것은 정경갈등에 대한 국민의 불안을 해소하고 정책의 방향을 올바로 설정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합의된 9개 사항의 내용도 시의적절하고 구체적이다. 정부가 금융시스템의 안정과 내수기반 확보를 위한 노력을 약속한 것은 기업활동에 적지 않은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가 구조개혁에 앞장서고 행정규제의 절반을 금년 안으로 없애겠다는 것도 이미 알려진 내용이지만 대통령의 약속이라는 점에서 기업에 신뢰를 주는 것들이다. 재계가 자율적으로 빅딜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나 내부거래를 통한 계열사 지원관행을 청산해 공정한 경쟁풍토를 조성하겠다고 한 것은 이 시대 재벌에 주어진 숙명적 과제로 꼭 지켜야 할 사안들이다.

양측이 이같은 모임을 정례화하기로 한 이상 다음번 모임에서는 단순한 건의 답변식 대화가 아니라 상호 약속사항에 대한 이행 점검의 단계에까지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환란이 어느 정도 진정되고 경제가 정상궤도를 찾아갈 때까지 이 모임은 계속되는 것이 양측에 모두 이로울 것이다. 기탄없는 대화가 계속되면 개혁과정에서 생겨날 수 있는 정치권과 재계 사이의 불필요한 의혹과 불신을 청산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정부와 기업은 이번 합의로 난국 극복을 위한 동반자적 관계를 확인하고 서로 공동의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다짐했다. 문제는 양측의 실천의지가 어느 정도냐 하는 것이다. 권위주의적 시장개입에 익숙한 정부와 국가경제 전체보다 자신의 이익에만 집착해 온 기업이 과거의 속성을 버리지 못한다면 합의는 공염불에 그친다. 그러나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다. 정부와 기업은 국민이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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