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중소기업 살리기

  • 입력 1998년 6월 14일 18시 42분


중소기업이 최악의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다. 정부가 엄청난 규모의 중소기업지원자금을 풀고 대출을 독려하고 있지만 은행들은 꿈쩍도 않는다. 부실은행 정리시한인 6월 말이 다가오면서 오히려 돈줄을 죄고 있다. 심지어는 일반대출을 신탁대출 등 금리가 높은 쪽으로 바꾸도록 종용하거나 대출금중 일부를 떼어 강제로 예금에 들도록 하는 이른바 ‘꺾기’까지 여전하다는 것이다.

정부가 중소기업자금 완화대책을 내놓은 지난달 32개은행의 중기대출잔액은 되레 8천6백85억원이 줄었다. 원자재수입 지원용으로 세계은행(IBRD)자금 10억달러 등 총 30억달러를 지원했지만 지난 1개월간 집행된 액수는 고작 3억8천만달러에 불과했다. 대부분의 자금은 그대로 금융기관에 잠겨 있다. 또 지난 2월 중소기업 대출지원을 위해 총액대출한도를 3조6천억원에서 5조6천억원으로 2조원 늘렸지만 그 중 중소기업에 대출된 것은 1조여원에 지나지 않았다.

아무리 정부가 지원자금을 풀어도 중소기업엔 그림의 떡이다. 공장건물이나 부동산 담보가 있어도 신용보증기금이나 기술신용보증기금의 보증서를 요구하기 일쑤며 보증기관 역시 또 다른 담보를 요구하고 있다. 소규모 업체가 은행돈 빌리기란 그야말로 하늘의 별따기다. 여기에 내수판매 부진, 대기업들의 어음 만기연장 횡포까지 겹쳐 자금난은 날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이 때문에 수많은 중소기업이 쓰러지고 있다. 용케 살아남은 기업들도 원자재 등을 구할 수 없어 가동률이 60% 수준에도 못미친다. 이는 가동률 조사가 처음 시작된 85년 이후 최저치다. 이대로 가다가는 우리산업의 뿌리인 중소기업 기반이 송두리째 무너져내리지 않을까 우려된다.

물론 부실은행 정리를 앞두고 국제결제은행(BIS)의 최소자기자본비율 8%를 충족해야 하는 은행들의 고충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정부가 중기지원자금을 따로 대주고 국제통화기금(IMF)과 합의한 통화량 증가분 4조5천억원의 돈을 새로 풀어 은행들이 보유한 환매채(RP)와 통화안정증권을 사주기로 했는데도 자금줄을 틀어쥐고 풀지 않는 것은 극단적 이기주의의 발로다.

중기대출의 창구를 닫아건 은행은 이미 은행이기를 포기한 것이다. 중기대출 의무비율을 지키지 않는 은행에 대한 한국은행의 총액한도대출 배정분 삭감비율을 종전 50%에서 60%로 늘리는 것 등의 미봉책으로는 부족하다. 중소기업 금융지원실적을 토대로 금융기관 구조조정과정에서의 자금지원 등에 차등을 두어야 하며 최악의 경우 퇴출대상은행으로 분류해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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