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재홍/장군의 명예포기

  • 입력 1998년 6월 7일 20시 14분


장교교육의 핵심중 하나가 명예를 최고가치로 신념화하도록 하는 것이다. 장교를 ‘국제신사’라 부르는 것도 부끄럽지 않게 행동하는 ‘깨끗한 남자’들이기 때문이다. 사관학교와 ROTC의 장교양성코스에서는 학과수업과 야전훈련 못지 않게 명예제도의 비중이 높다. 다른 성적이 아무리 우수해도 거짓말 도둑질 커닝을 하다가 적발되면 명예규정 위반으로 쫓겨나게 돼 있다.

▼장교중에서도 장군이 되기란 말 그대로 하늘의 별따기다. 우리 국군의 장성은 통틀어 4백50명 안팎이며 신원이 공개된 대장은 8명, 중장은 50명미만이다. 장군에 대한 예우는 각별하다. 장군이 있는 곳이면 계급대로 별을 그려넣은 깃발을 게양한다. 장군이 탄 승용차에 육군은 빨간색, 해군은 흰색, 공군은 파란색 성판(星板)을 다는 것도 그런 대접이다.

▼현역 육군중장이 부대운영비에서 돈을 떼먹은 혐의로 구속됐다. 가짜 영수증을 이용해 1억5천여만원을 횡령했다니 장군의 명예와 중장이라는 무게 때문에 충격이 더 크다. 93년 군 숙정태풍때도 현역준장들이 구속된 적은 있었지만 ‘비행’ 때문은 아니었다. 고위장성의 비리에 대해 전역조치로 형사처벌을 대신하던 관례를 깨고 즉각 구속한 것도 그의 행위가 명예와는 거리가 멀다고 보았기 때문인 듯하다.

▼‘신성한’ 국방의무라는 말이 말해주듯이 군지휘관은 성직(聖職)과도 같은 직업이다. 정직 신뢰성 조사에서 성직자와 함께 높은 점수를 얻는 직업인이 군인이다. 부하들에게 목숨을 걸고 싸우라는 명령은 비인간적이고 비합리적인 경우가 많다. 그런 명령에 복종하도록 하는 힘의 원천이 명예와 존경심이다. 비리를 범할 때 그는 이미 장군이기를 포기한 것이다.

〈김재홍 논설위원〉nieman96@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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