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한국관리의 위기 불감증

  • 입력 1997년 3월 24일 20시 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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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주재 한국은행 책임자는 최근 현지에서 영업하고 있는 우리나라 금융기관들의 도산을 우려해 미국중앙은행(FRB)이 감독성 업무지시를 한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기자의 질문에 『우리 은행들이 매년 실시되는 FRB의 정기감사를 받고 있을 뿐』이라고 딴전을 피웠다. 정부에서 파견된 한 관리는 『상황은 맞지만 이를 기사화하는 것은 국익에 맞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재정경제원의 책임자는 이런 내용의 기사가 보도된 뒤 한보와 삼미부도사태 이후에도 우리나라 은행들의 차입에 변화가 없다는 해명자료를 돌렸다. 그 증거로 수출입은행이 삼미사태 후 뉴욕에서 글로벌 본드발행을 성공적으로 마쳤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는 이 본드를 판매하면서 손님을 끌기 위해 제공된(치욕적)프리미엄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여기에다 서울의 한 재경원 관계자는 기자에게 국제전화를 걸어 『외국 현지의 어려운 상황을 국내에 사실대로 밝힐 수 없는 입장을 이해해 달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 「입장」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피했다. 그러나 영업일선에서 뛰는 현지의 지점장들 생각은 다르다. 상황이 갈수록 악화돼 가고 있어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돈을 빌리지 못해 도산의 벼랑에 서 있는데도 관리들은 사안의 심각성을 감추려 한다』며 분노감을 나타내고 있다. 한 지점장은 상황이 그처럼 나쁘지 않다면 왜 한국은행이 시중은행에 10억달러를 지원해 주기로 했는지 이해가 안간다고 지적했다. 재경원 관리가 해명자료를 돌린 뒤 본사 뉴욕사무실에는 현지 은행관계자들의 이같은 걱정스런 전화가 16통이나 걸려왔다. 정부입장에서 볼 때 부끄러운 일이면 언론에 보도되지 않도록 하는 게 관리들의 자세라면 우리나라의 선진국 진입은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규민<뉴욕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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