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의 한보수사결과 발표대로라면 「깃털」만 있고 「몸통」은 없다. 역시 예상한대로 엄청난 특혜대출 뒤에 숨은 권력의 실체는 드러나지 않았다. 한보비리는 권력의 외압(外壓)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의혹의 핵심이었으나 검찰의 소극적 수사로 이를 밝혀내지 못했다. 한보수사는 성역(聖域)의 벽이 높다는 사실만 다시 확인시켜준 셈이다. 이대로 덮고 만다면 의혹은 증폭될 수밖에 없고 따라서 사회불안을 키우는 결과가 될 것이다.
한보비리의 핵심은 약5조원의 천문학적 금액을 대출해 주도록 은행에 압력을 넣은 배후인물이 누구냐와 비자금조성 의혹이다. 전문가들에 의하면 문제의 당진제철소는 3조원 정도에 지을 수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나머지 2조원은 어디로 갔는가. 검찰은 한보철강의 시설 및 운영자금 4조8천여억원을 제외한 2천1백여억원을 계열사 신설 및 인수 등에 유용했으며 이중 사용처가 확인 안된 것이 2백50억원이라고 밝혔다. 鄭泰守(정태수)씨의 일방적 진술을 토대로 한 이 말을 믿는다 해도 2백50억원의 행방이 의문이다. 막대한 액수를 비자금으로 조성, 정관계(政官界) 금융계 등에 로비자금으로 뿌린 의혹은 일부밖에 밝혀지지 않았다.
검찰은 한 점의 의혹도 남기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주장했으나 수사결과를 보면 믿을 수가 없다. 당진제철소 인허가과정과 코렉스 신공법의 도입, 은행감독원의 업무 등 어느 부분에서도 정부가 잘못한 것은 없었다고 한다. 검찰의 발표내용은 한마디로 주범으로 지목된 洪仁吉(홍인길)의원 등이 은행장들에게 압력을 넣어 천문학적 금액을 대출케 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과연 국민이 이를 믿을 것으로 생각하는가. 이런 엄청난 일이 홍의원 정도 선에서 10억원의 대가로 벌어질 수 있을 것인지 납득하기 어렵다.
검찰은 朴在潤(박재윤)전통상산업부장관과 전현직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 등을 조사했다고 하나 얼마나 적극적으로 조사했는지 알 수 없다. 검찰이 권력층 외압 의혹의 수사단서를 잡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이들 전현직 관료에 대한 극비조사와 정씨의 구속만기일에 맞추어 불과 20여일만에 서둘러 수사를 마감하려는 움직임이 그런 인상을 준다. 모양을 갖추기 위해 사건핵심과 관련없는 야당의원을 끼워넣고 그것도 대출압력을 넣은 홍의원 등보다 무거운 죄목을 적용한 것이라든지 상식을 뛰어넘는 떡값을 받은 정치인들에게 면죄부를 준 것도 문제다.
외압의 실체와 비자금의 조성규모 및 사용처에 대한 수사의 진전없이 사건을 덮을 수는 없다. 수사결과를 국민이 믿어주지 않는데도 이대로 덮어버린다면 다음 정권때 재수사가 불가피하게 될지 모른다. 한보의혹의 외압실체를 밝히지 못한 검찰의 수사결과는 검찰의 불명예이자 국가공신력을 추락시켰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