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종구 기자] 지난해 9월 경총 고급인력정보센터는 법원의 의뢰를 받아 한양공영 법정관리인을 추천했다. 김종주씨(70). 애초에는 추천인들이 그를 추천대상에서 제외했었다. 할 일이 태산같은 부실기업 법정관리인으로 고희의 노인은 무리였기 때문.
그러나 이력서를 넘기는 순간 그들의 눈은 빛났다. 그리고 만장일치로 OK 사인을 냈다. 이력서 뒷장에 96동아국제마라톤 풀코스 완주증이 첨부돼 있었던 것. 추천인들은 『이런 건강이라면 나이가 문제가 아니다』고 입을 모았다.
김씨는 지난해 경주에서 4시간57분57초의 기록으로 42.195㎞를 달렸다. 더 놀라운 것은 그 다음. 『완주하고 경주시내에 가서 맥주 한 병과 육개장을 비웠죠. 고속버스로 서울에 오니 자정이 넘었더군요. 다음날 아침 조깅을 하고 회사에 출근했죠』 그는 당시 자신이 법정관리로 회생시킨 홍진기연의 회장직을 맡고 있었다.
그의 사무실 벽은 각종 육상대회 상장들로 빼곡하다. 88년에는 서울에서 열린 세계노장마라톤대회에서 4시간25분29초로 골인했다. 88, 89년에는 전국고령자육상대회에서 하룻동안에 1백m 2백m 4백m 높이뛰기 멀리뛰기 투포환을 휩쓸며 2년연속 6관왕에 오르기도 했다. 현재 그의 1백m 기록은 14초대.
하지만 원래 그는 운동에 소질도 관심도 없었다. 쉰살이 돼서야 난생 처음 조깅화를 신었다. 초등학교 졸업에 검정고시를 거쳐 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았고 국세청 근무, 가전제품 행상, 종이도매업 등의 직업을 갖기도 했다. 그리고 나이 50에 건강에 불안을 느껴 「러닝맨」이 됐다. 매일 아침 6시 강남 도산공원에 가면 5㎞ 산책길을 달리는 그를 어김없이 만날 수 있다. 20년째다.
국세청 근무당시 법정관리와 연관된 일로 한 판사를 알게 된 것이 계기가 돼 84년 다 쓰러져가던 홍진기연의 관리를 맡아 기사회생시키면서부터 기업 법정관리 일과 인연을 맺었다. 50일간의 장기파업으로 붕괴직전에 있던 한양공영을 1백일만에 흑자로 전환시키기도 했다. 남다른 성실성과 친화력으로 죽어가는 기업을 되살리는 힘의 원동력은 「마라톤」이라고 그는 말한다.
『끊임없이 찾아오는 육체의 한계, 주저앉고 싶은 유혹…. 영광은 그러한 고통을 넘어 끝까지 달리는 사람만의 몫이죠. 마라톤정신으로 인생을 살면 세상에 못할 일이 없어요』 그는 오는 3월16일 97동아국제마라톤 마스터스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다시 경주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