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21]「부패방지 파수꾼」목소리 커진다

  • 입력 1999년 1월 13일 19시 42분


《경실련이나 참여연대를 비롯한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요즘 “솔직히 약간은 당혹스럽다”고 말한다. ‘자고나니 유명해졌다’고 하지만 자신들이 그런 경우라는 것이다.

1∼2년전만 해도 좀처럼 자신들의 주장에 귀를 기울여주지 않던 사회 분위기가 한순간에 바뀌었다는 것이다. 시민단체에는 요즘 부패 환경문제 등을 놓고 인터뷰나 자문을 요청하는 전화가 쇄도하고 있다.

시민단체에 쏠리는 기대와 관심은 우리 사회가 정상적인 경로로 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국가 또는 정부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세였던 시민사회가 적어도 대등한 관계로 빠르게 위상을 회복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부정부패 추방은 그런 역전이 가장 극적으로 나타나고 있고 또 나타나야 할 영역이다. 시민단체들의 부정부패 추방노력을 되짚어보았다》

▼외국시민단체 활동▼

해마다 9월말이면 많은 국가가 긴장 속에 베를린을 주시한다. 베를린에 본부를 둔 국제투명성협회(TI)가 국가별로 부패의 정도를 보여주는 투명성지수를 발표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한국의 투명성지수는 10점 만점에 4.2로 조사 대상 85개국 중 43위였다. 아프리카의 짐바브웨와 같은 수준이었으니 명색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으로서 부끄러운 노릇이었다.

회원들의 기부금으로 운영되는 국제투명성협회는 시민단체일 뿐이다. 1년 예산도 1백만달러를 조금 넘는다. 97년도 예산은 1백10만달러, 한화 약 13억원이었다. 그런데도 부패문제에 관한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OECD의 부패방지협약 협상테이블에 NGO(시민단체) 대표 자격으로 참석할 정도다.

부패문제가 글로벌 이슈로 떠오르면서 국제투명성협회와 같은 시민단체들의 활동과 역할이 새삼스레 주목받고 있다.

미국은 예산낭비 방지연대(TAF) 정부감시연대(POGO) 등 대표적인 부패추방운동 단체들의 활동이 더 활발해졌다. 내부고발자의 제보를 받는 핫라인은 물론 인터넷을 이용한 전문 고발 웹사이트까지 풀 가동되고 있다.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도 예외가 아니다.

시민단체의 활약은 미국에서 두드러진다. 70년대만 하더라도 미국은 국방부가 57센트짜리 나사를 적정가격의 13,000%인 76달러에 구입하거나 20달러면 충분한 커피메이커를 6천달러에 구입하는 일들이 흔했다. 이런 예산낭비와 부패를 적발해 내 사회적으로 이슈화함으로써 정부로 하여금 제도적 방지책을 마련토록한 것은 시민단체들이었다.

▼경실련 역점사업▼

한국도 이런 경로를 밟아가고 있다. 시민단체들이 민주화운동에 앞장서느라 부패추방과 같은 사회운동에 뛰어든 시기가 상대적으로 늦긴 했지만 발전속도는 오히려 빠르고 의욕도 강하다.

선두격인 경제정의실천연합(경실련)은 운동의 초점을 아예 반(反)부패에다 맞추었다. 부정부패추방운동본부를 설치해 시민들의 제보를 받고 있고 이를 모아 법적 제도적 개선책을 마련하기 위해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경실련은 지난해 수해로 침수된 차량에 대한 보험적용문제를 해결하는데 앞장섰고 최근에는 법조브로커 고발창구도 개설했다.

경실련의 부패추방운동본부에 접수된 비리 고발건수는 작년 한 해에만 7백50건에 달했다. 유종성(柳鍾星)경실련사무총장은 “올해는 특별검사제 내부고발자보호법 돈세탁방지법의 도입 등 제도적 개혁에 주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실련이 역점을 두고 있는 또 하나의 사업은 예산낭비에 대한 감시. 서구에서는 이미 보편화돼 있지만 예산감시는 부패를 그 근원에서 끊어내는 효과가 있다.

경실련은 지난해 5월부터 ‘예산낭비신고센터’(02―775―9898)를 개설, 예산 과대집행과 입찰비리의혹 등에 대한 제보를 받고 있다. 그동안 신고된 사례만 1백70건이 넘고 20건은 이미 시정조치돼 실제로 수십억원대의 예산절감효과를 거두었다.

예산낭비의 소지를 줄이기 위해 펼친 복식부기제 도입운동도 빼놓을 수 없는 성과. 경실련으로부터 자극받아 정부는 올해 경기 부천시를 복식부기제 도입 시범지자체로 선정할 예정이다.

▼참여연대 역점사업▼

대기업을 상대로 소액주주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벌였던 참여연대는 시민감시국 산하에 △맑은사회만들기운동본부 △사법감시센터 △의정감시센터를 둠으로써 시민감시의 제도화를 꾀하고 있다.

이런 접근은 거대한 관료기구와 맞서는 시민단체들이 흔히 갖기 쉬운 즉흥성 산발성을 최소화하기 위한 것.

참여연대는 지난해 11월에는 약값폭리 실태를 파헤쳐 보건복지부의 즉각적인 약값 인하조치를 끌어내기도 했다. 부패방지를 위한 ‘부패방지법’ 제정 추진도 역점 사업이다. 박원순(朴元淳)참여연대사무처장은 “부패추방의 핵심인 행정의 투명성 확보는 시민들의 끊임없는 감시를 통해서만 이뤄질 수 있다”고 말했다.

예산낭비 감시도 빼놓을 수 없다. 참여연대는 낭비된 예산에 대한 배상환수운동을 본격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미국의 경우 낭비된 예산이 시민의 제보로 국고에 환수될 경우 환수된 예산의 15∼30%를 제보자에게 보상금으로 주고 있다. ‘쿼탐(Qui Tam)’이라고 불리는 이 제도는 86년 실시됐는데 이를 통해 지금까지 모두 20억달러의 낭비예산이 환수됐다.

국회 법사위에 계류 중인 ‘부패방지법안’에도 예산비리 제보자에게는 회수된 예산액의 5% 이하에 해당하는 돈을 ‘포상금’으로 주는 조항이 들어있어 법안이 통과될 경우 시민단체의 활동이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클린21」팀

팀장 이재호(정치부차장)

이병기(사회부)

공종식(정치부)

부형권(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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