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영은 기자의 가을이야기] 8년차 불펜포수 원종선 “다음 생엔 꼭 선수를…”

  • Array
  • 입력 2010년 10월 11일 07시 00분


코멘트
삼성 원종선.
삼성 원종선.
삼성 원종선(29·사진) 씨는 불펜 포수만 8년째입니다. 물론 한 때 야구선수였습니다. 원주고 시절까지 외야수를 맡았고, 고교 선배인 안병원·조경택을 우상으로 삼았습니다. 하지만 2년제 대학을 졸업하던 2002년까지 결국 지명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 때 들어온 제안. “현대에 포수로 테스트를 한 번 받아봐라.” 하지만 포수 미트를 껴본 지는 불과 1년 남짓. 결국 현대에서는 그에게 ‘포수’가 아닌 ‘불펜 포수’를 제안합니다. 하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겁니다.

답답하기도 했습니다. 3년을 현대에서 일하다, 2005년에 훌쩍 호주로 떠났습니다. “야구가 아닌 다른 일에 도전해보고 싶었어요. 1년간 워킹 홀리데이를 경험하면서, 비록 고생은 했지만 많은 걸 배웠죠.” 그러나 역시 천직이었나 봅니다. 한국으로 돌아오자마자 당시 삼성에 있던 박흥식 코치가 그를 불렀습니다. 선배 진갑용도 “얼른 오라”고 부추겼고요. 성실하고 좋은 불펜 포수라고, 그새 입소문이 난 겁니다. 그 이후 다시 5년이 흘렀습니다.

사실 불펜 포수는 꾸준히 하기 힘든 일입니다. 아직은 ‘훈련 보조’ 개념이니 더 그렇습니다. 8년차 원 씨의 연봉은 아직 3000만원도 안 되는 수준입니다. “이렇게 불펜 포수를 오래 하는 사람도 드물다는 걸 알아요. 일본은 직업적으로 활성화 돼있는데 한국은 아직 어엿한 직업으로 인정받지 못하니까…. 우리나라도 빨리 일본처럼 됐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시간은 좀 걸릴 것 같네요.”

어쩌면 힘들고 서러울 수도 있습니다. 프로 선수들과 똑같이 시즌을 보내고 전지훈련까지 함께 하는데, 원 씨는 경기에 뛸 수 없는 입장이니까요. 하지만 그는 웃습니다. “야구와 함께 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요. 경기가 잘 풀리면 제가 도움이 됐다는 만족감도 생기고요.” 동기생인 배영수나 윤성환과 마음을 터놓고 얘기하고, 선배 정현욱도 그를 늘 살뜰하게 챙겨준답니다. 한 몸 같은 투수들의 호투를 보면서, 질투 대신 순도 100%의 박수를 보낼 뿐입니다. 다만 한 가지. “제가 야구 한다고 좋아하셨던 아버지께 죄송할 뿐이에요.”

그래도 그는 후회하지 않습니다. 그저 동고동락했던 동료들과 보람을 나누기 위해 삼성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바랄 뿐입니다. 그리고…. 마냥 사람 좋게 웃던 그의 얼굴이 잠시 진지해졌습니다. “전 다시 태어나도 야구를 할 거예요. 그리고 그 생에는 꼭, 선수로 뛰고 있었으면 좋겠어요.”yeb@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