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사태에 스러진 ‘히말라야의 꿈’

  • 입력 2007년 5월 17일 02시 5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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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베레스트 원정 오희준-이현조 대원 등반 중 참변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해발 8850m)에 신 루트를 개척하던 베테랑 산악인 2명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박영석(44·골드윈코리아 이사·동국대 산악부 OB) 씨가 이끄는 ‘에베레스트 남서벽 원정대’의 오희준(37·서귀포 영천산악회), 이현조(35·전남대 산악부 OB·이상 골드윈코리아) 대원은 16일 오전 1시 50분경(이하 현지 시간) 네팔 에베레스트 남서벽 해발 7700m의 캠프4에서 눈사태와 낙석으로 실종된 지 13시간여 만인 오후 3시 시신으로 발견됐다.

오희준, 이현조 대원은 15일 캠프4를 구축하고 17일 1차 정상 공격에 나서기 위해 준비 중이었다. 15일 밤부터 폭설이 내리며 기상이 악화되자 오희준 대원은 16일 오전 1시 40분경 베이스캠프(해발 5300m)에 머물던 박영석 원정대장에게 무전으로 연락해 대책을 논의하던 중 통신이 끊겼다.

박영석 씨는 위성전화 통화에서 “날이 밝는 대로 캠프4가 보이는 해발 6400m의 캠프2에 올라갔더니 눈사태로 텐트가 사라졌다. 수색 끝에 두 대원의 시신을 발견했다. 이현조 대원은 침낭 속에 있는 상태였는데 낙석 때문인지 시신이 심하게 손상됐다”고 울먹였다.

현재 시신은 베이스캠프로 옮겨지고 있는 중이다. 숨진 대원들의 소속사인 골드윈코리아 관계자와 유족은 17일과 19일 네팔 현지로 출발할 예정이다. 원정대는 등반을 중단하고 27일경 귀국할 예정.

박영석 씨는 올해가 1977년 고 고상돈(1979년 북미 매킨리봉에서 실족사) 씨가 한국인 최초로 에베레스트에 등정한 30주년인 것을 기념해 에베레스트 남서벽에 ‘코리안 루트’를 개척하기로 하고 3월 31일 동료 산악인 8명과 네팔 현지로 떠났다.

오희준 대원은 지난 한 해에만 8000m 이상 고봉 4개를 연달아 오르는 등 히말라야 8000m급 14좌 중 10개봉을 등정했고 이현조 대원도 2005년 세계 최고의 난도를 자랑하는 낭가파르바트(해발 8125m) 루팔벽 등 히말라야 8000m급 5개봉을 등정한 베테랑.

지방이 고향인 두 대원은 2000년부터 박영석 대장의 서울 성북구 월곡동 집에 기거하며 친형제나 다름없는 우정을 쌓았다. 오 대원은 남·북극점 모두를, 이현조 대원은 남극점을 박 대장과 함께 밟았다.

박영석 원정대는 두 달 가까이 해발 6500m부터 정상까지 2300m 이상 수직으로 구성된 남서벽을 통해 에베레스트 정상에 서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원정대원 중 경험이 많은 두 대원은 솔선수범해 14일 해발 7000m의 캠프3를 만든 데 이어 캠프4도 구축한 뒤 정상 정복을 눈앞에 뒀다가 변을 당했다.

두 대원 모두 미혼이다. 논에서 일하고 집에 돌아와 방송 뉴스를 보고 사고 소식을 접했다는 이현조 대원의 부친 이행신(73·전남 영광군) 씨는 “떠나기 전날(3월 30일) 아들이 집에 내려왔을 때 본 게 마지막이다. 어머니 산소에 들렀다가 점심도 못 먹고 서둘러 올라갔다. 두 달 정도 있다가 돌아온다고 했는데 이런 일이 났다”고 망연자실했다.

오희준 대원의 형 희삼(40·제주 서귀포시) 씨는 “이번 원정이 끝나면 낭가파르바트에 함께 가자고 약속했는데 야속하게 동생이 먼저 갔다”며 “어버이날 부모님이 동생과 위성전화 통화를 하고 무척 기뻐하셨는데 사고 소식을 어떻게 말씀드려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전창 기자 j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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