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6일 광주지검 순천지청 정모 검사실. 폭행치사 혐의로 입건된 김모 씨(41)의 누나(46)가 주머니에서 몇 만 원이 든 꼬깃꼬깃한 봉투를 꺼내려 했다. 하지만 “사무실에 폐쇄회로(CC)TV가 설치돼 있다”는 정 검사의 말에 깜짝 놀라 봉투를 다시 넣었다. 그는 “너무 고마워 식사 한 끼라도 대접하고 싶었는데”라며 눈물을 글썽였다. 정 검사는 “밥값은 이미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동생의 딸(13)이 시집갈 때 축의금을 미리 낸 것으로 생각해 달라”며 달랬다.
김 씨 가족이 정 검사를 은인으로 여기는 것은 작은 배려 때문. 15년 전부터 당뇨를 앓고 있는 김 씨는 올 8월 8일 오후 2시경 전남 여수시 신기동에서 동네 선배 B 씨(51)를 만났다. 두 사람은 ‘하는 일마다 안된다’고 낙담하며 술을 마셨다. 그로부터 10시간 뒤인 9일 오전 1시경 거리에서 B 씨와 말다툼을 하다 몸을 밀쳤다. 순간 B 씨는 다리가 꼬여 넘어지며 머리를 다쳤다. 김 씨는 B 씨를 병원으로 옮겼으나 3일 만에 숨졌고 덜컥 겁이 난 김 씨는 서울로 달아났다.
김 씨는 지난달 6일 전남 여수경찰서에 자수해 같은 달 13일 구속됐다. 김 씨 가족은 B 씨 가족들을 만나 “정말 죽을죄를 지었다”며 사죄했다. B 씨 가족들은 진심어린 사죄에 합의를 해줬다. 김 씨는 자수 직전 단둘이 살고 있는 딸에게 “외국으로 가 한동안 볼 수 없을 것 같다”며 거짓말을 하기도 했다.
정 검사는 수사과정에서 김 씨 사연을 접하게 됐다. 정 검사는 양측 가족이 합의한 것을 확인한 뒤 김 씨 누나에게 전화를 걸어 “구속적부심을 신청하라”고 조언했다. 구속적부심은 구속된 사람에 대해 법원이 구속 적법성과 필요성을 심사토록 해 타당성이 없으면 석방하는 제도다.
정 검사는 형편이 어려운 김 씨 가족이 변호사비 1000만 원과 벌금 500여만 원을 마련하지 못해 발만 동동 구르는 것을 알고 “기초수급자는 국선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다”며 대한법률구조공단의 변호사를 소개시켜 줬다. 김 씨는 지난달 18일 구속적부심을 통해 풀려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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