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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7월 10일 06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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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 연평도 해상에서 고기잡이 도중 북한 경비정에 나포됐다 돌아온 뒤 북한을 찬양 고무했다는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은 ‘태영호’ 선원들과 마을 주민들이 40년 만에 열린 재심에서 누명을 벗었다.
수사 과정에서 원수처럼 갈라섰던 섬 주민들도 마음의 문을 열고 화해의 손을 잡기로 했다.
전주지법 정읍지원은 9일 오전 ‘태영호 사건’에 대한 재심 선고공판에서 반공법 위반 등의 혐의로 징역 3∼10년이 확정됐던 전북 부안군 위도면 태영호 선주 강대광(68) 씨와 유가족 등 5명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또 ‘북한을 찬양한 이들 어부를 신고하지 않았다’며 반공법 위반 등의 혐의로 징역 1년∼1년 6개월을 선고받았던 위도 주민 5명에 대해서도 무죄 판결했다.
재판부는 “어부들이 탈출 목적으로 어로 저지선을 넘은 게 아니고 북한 경비정에 납치된 게 인정된다”며 “수사 과정에서 가혹행위 및 협박 등에 의해 사실과 다르게 진술하도록 강요받았기 때문에 공판내용 등을 믿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오랜 기간 국가기관의 잘못으로 고통을 겪은 데 대해 피고인과 유가족들에게 심심한 유감과 깊은 위로를 표한다”고 밝혔다.
이 사건을 수사했던 당시 부안경찰서 형사들도 지난달 재심공판에서 “위에서 지시해 확신을 가지고 수사했으나 모든 것이 잘못됐고 피해자들에게 죄송하다”고 증언했다.
전북 부안군 위도면 어선 태영호의 어부 8명은 1968년 서해 연평도 해상에서 북한 경비정에 나포됐다 4개월 만에 풀려난 뒤 수사 과정에서 경찰의 고문과 가혹행위를 견디다 못해 허위 사실을 자백했고 반공법 위반 혐의로 1971∼75년 징역형 등을 선고받았다.
마을 주민 50여 명도 어부들의 북한 찬양행위 등을 신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줄줄이 끌려가 가혹행위를 당한 끝에 1979년 징역형 등이 확정됐다.
이후 납북 어부들은 마을 주민들의 냉대를 받으며 평생을 고통 속에 살아왔고 주민들도 이들 때문에 억울하게 고문을 당했다며 서로 등을 돌리고 지내왔다.
이 사건에 휘말렸던 어부 8명 가운데 생존자 4명과 증인을 섰던 마을 주민 30여 명은 10일 위도 중고등학교 체육관에서 모여 40여 년의 응어리를 풀고 화해의 시간을 갖기로 했다.
한편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작년 12월 태영호 사건에 대해 “국가가 수사 과정에서 불법 감금과 가혹행위 및 공소 유지를 위한 증거 미제출 등에 대해 사과하고 화해를 이루는 적절한 조치를 취하라”고 권했으며 전주지법 정읍지원은 4월 18일 태영호 사건 재심을 받아들여 재판을 진행해 왔다.
김광오 기자 ko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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