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술로 풀어보는 경제] ‘분배정의’

  • 입력 2007년 7월 11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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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제

진리가 사상 체계의 으뜸 덕목이라면 정의는 사회제도의 으뜸 덕목이다.

아무리 잘 만든 이론이라도 진리가 아니라면 물리치거나 고쳐야 한다. 그와 마찬가지로 아무리 쓸모 있고 번듯한 제도라도 정의롭지 못하다면 다시 짜거나 버려야 한다. 사회 전체의 복지를 도모한다는 빌미로 정의를 어길 수 없다. 개인은 정의에 의해 온전히 보호돼야 한다. 정의는 다수의 이익을 위해 소수에게 희생을 짊어지우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중략)

정의의 원칙은 기본적 자유 다음으로 사회 경제적 분배의 문제를 고려한다. 사회 경제적 분배가 문제일 경우 사회 계층 사이에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차이를 도외시하기는 어렵다. 예를 들어 자본주의국가에서 기업가 계층의 일원으로 출발하는 사람은 미숙련 노동자 계층의 일원으로 출발하는 사람보다 훨씬 나은 미래를 기대할 것이다. 사회에 현존하는 부정의가 모두 말소된 상태가 되더라도 삶에 대한 전망의 차이가 두 계층 사이에 여전히 존재할 것이다. 그렇다면 미래 삶의 전망에서 나타날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것은 무엇인가? 정의의 원칙은 미숙련 노동자와 같이 열악한 처지에 있는 사람이 미래의 삶의 전망에서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경우에 불평등을 인정한다. 삶의 전망에서 나타나는 불평등은 그 불평등을 줄일 때 사회적 약자의 처지가 더욱 악화될 경우에만 허용될 수 있다.

■ 해설

위의 글은 고려대가 2007학년도 수시모집 논술 시험에서 ‘정의와 효율성’을 주제로 제시한 네 개의 글 중 하나다. 미국의 철학자 존 롤스의 ‘정의론’에서 발췌한 것으로 ‘분배 정의’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는 경제주체의 자유로운 이윤 추구가 가능하기 때문에 소득과 부의 분배가 경제 주체의 경제 행위에 따라 다양하게 이루어진다.

분배의 다양함은 분배 방법뿐만 아니라 분배 크기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분배 크기의 차는 결국 분배의 불균등함을 뜻하며, 그 원인은 선천적 능력의 차, 상속되는 부의 차, 불확실성하에서의 선택의 차이 등에서 생긴다. 게다가 축적된 소득과 부는 지속적으로 다시 소득을 만들어 내기 때문에 불균등을 심화시킨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소득 분배의 불균등은 분배 자체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부의 집중으로 인한 빈곤층의 발생, 지나친 이윤 추구에 의한 비인간화 문제와도 연관되는 것으로 자본주의의 단점으로 지적되곤 한다.

이런 현실에서 롤스는 ‘분배 정의’를 이루기 위해서는 사회에서 생활수준이 가장 낮은 사람들의 효용을 가장 크게 증가시키는 방향으로 분배가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이를 ‘롤스의 최소 극대화 원칙(Rawls’ minimaximization)’이라 한다. 특히 누구도 미래에 대해 알지 못하는 불확실한 상황을 가정할 때, 모든 사람이 위험을 피하고 싶기 때문에 최소 극대화 원칙에 동의할 것이라고 봤다.

누구라도 가장 빈곤한 계층으로 전락한 경우라면 어느 정도의 물질적 안락을 보장하는 사회적 안전망(safety net)을 원하기 때문이다.

롤스의 주장은 생활수준이 가장 낮은 자의 효용을 증대시킴으로써 불균등의 차를 줄이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평등주의적인 의미를 지닌다.

따라서 최소 극대화 원칙은 진보주의의 이념적 기초가 되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사회복지제도를 설계하는 데 많은 영향을 미쳤다.

한경동 한국외국어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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