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박효종]사학법 ‘모기 보고 칼 빼든 격’

  • 입력 2005년 12월 21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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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자크 루소는 250년 전 ‘사회계약론’ 서두에 명문을 남겼다.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으나, 쇠사슬에 묶여 도처에서 신음하고 있다.” 쇠사슬은 무엇인가. 인간의 일상을 얽어매는 각종 규정과 법규다. 혹시 지금의 상황이 바로 그 꼴이 아닌가. 자유로운 존재라고는 하지만,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구속하는 법과 규정은 너무나 많다. 고시생이 외워야 하는 행정법도 태산이고 국회 회기가 시작되면 의원입법, 정부입법 가릴 것 없이 수많은 법이 쏟아져 나온다. 특히 시민단체들이 모범적인 의정 활동을 평가하는 데 법 제정의 양적 측면을 주요 잣대로 꼽고 있어 국회의원들도 입법왕(王)이 되고자 난리다. 이러다 보니 없었던 법도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지고, 기왕에 있던 법은 규정이 더욱 강화된다. 결국 법치주의를 넘어서 입법 만능주의가 횡행하게 되는 셈인데, 행위 주체의 자유와 자율은 어떻게 되는가.

참여정부 들어와 수많은 법이 만들어졌다. 큰 것만 들어도 이름도 생소한 과거사법, 언론법, 성매매금지법 등이다. 이쯤 되면 ‘법 없이 사는 사람’은 생각조차 할 수 없다. 이번에 강행 처리된 사립학교법은 어떤가. 이 법을 무리하게 통과시킨 여당은 정당성을 강변하기에 바쁘다. 사학 경영의 투명성을 강조하며 사학재단이 공적자금이 들어간 공익법인이라는 점에 초점을 맞춘다. 하지만 사학 관계자들과 종교계는 사학 주체의 자율성을 훼손하는 악법이라며 불복종 운동을 벌이겠다고 다짐했고 야당도 장외투쟁에 나섰다.

이 지경까지 된 데는 무엇보다 사학재단의 통절한 반성이 있어야 한다. 사학재단에 대한 원성이 얼마나 높았으면 개방형 이사제, 재단 관계자의 학교장 겸직 금지 규정까지 만들었겠는가. 사학 관계자들은 “억울하다”고만 되뇌지 말고 법이 통과되기 전에 스스로를 채찍질할 자정 능력이 있다는 점을 행동으로 보여 줬어야 했다. 전체 사학 가운데 비리 사학의 수가 적다고 하지만 중요한 것은 수가 아니라 비리의 정도다. 꼴뚜기는 소수이지만, 그 꼴뚜기가 어물전 망신을 시킨다는 점을 왜 생각하지 못하는가.

하지만 아무래도 정부 여당의 해법이 잘못됐다. 비리 사학이 있다고 해서 개방형 이사제를 강요하는 식의 해법을 내놓는다면 ‘모기 보고 칼 빼드는’ 상황과 무엇이 다른가. 참여정부는 웬만한 문제가 생기면 법을 만들어 규제하겠다는 발상이 체질화된 듯하다. 문제만 생기면 개입하고자 하는 열망으로 가득 차 ‘파블로프의 개’처럼 입에 침이 괸다. 그것도 헌법처럼 나중에 바꾸지 못할 법으로 다스리겠다고 으름장을 놓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성매매는 물론이고 역사 문제나 언론시장도 법으로 규제하겠다며 입법했다. 또 대학 총장 선거에 문제가 있다고 하여 선거관리위원회의 감독을 받도록 법제화했다.

이처럼 행위 주체의 자율성을 무시한 ‘정치적 도덕주의’나 ‘입법 만능주의’는 도덕을 법으로 가늠하겠다는 법가(法家) 사상의 부활이 아니고 무엇인가. 21세기 한국에 가히 법가의 시대가 도래한 느낌이다. 이처럼 무차별적으로 법을 만들다 보니 만들어지는 법마다 각종 헌법소원이 줄을 잇고 있다. 그것은 별 고민 없이 만들어진 법이 그만큼 헌법정신을 침해하고 있다는 우려가 표명된 산 증거가 아니겠는가.

생각해 보면 신(神)도 인간에게 열 가지 법만을 주었을 뿐이다. 시나이 산에서 신이 모세에게 준 10계명이 그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웬 법을 이렇게 많이 만들어 사람들을 옥죄는가. 물론 명분과 이유가 없을 리 없다. 하지만 가난이 우리 곁에 있을 수밖에 없는 것처럼, 비리도 언제나 발생한다. 비리가 있다고 해서 법으로 자유와 자율의 싹을 잘라버릴 궁리만 하면 어떻게 되는가. 왜 정부는 행위 주체의 자율 규제나 자정 능력을 믿지 못하는 것일까.

잘못과 비리가 있다면 적절한 ‘비례의 원칙’에 의하여 벌을 받게 하면 그만이다. 그러지 않고 예방적 차원에서 비리 척결을 명분으로 제도적으로 개입하는 것은 ‘오버’하는 일이다. 자유와 자율이 21세기의 시대정신임을 감안할 때 참여정부는 자율적 영역에 ‘정치적 도덕주의’의 이름으로 무차별 개입하려는 유혹을 과감히 떨쳐 버려야 할 것이다.

박효종 객원논설위원 서울대 교수·정치학 parkp@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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