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태웅 “이젠 법을 위한 투쟁을 하는 셈이죠”

  • 입력 2005년 11월 28일 03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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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에 대한 투쟁’에서 ‘법을 위한 투쟁’으로.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 로스쿨 교수인 백태웅 씨가 26일 귀국해 과거와 현재의 법의 의미, 세계 속의 한국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김재명 기자
‘법에 대한 투쟁’에서 ‘법을 위한 투쟁’으로.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 로스쿨 교수인 백태웅 씨가 26일 귀국해 과거와 현재의 법의 의미, 세계 속의 한국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김재명 기자
《백태웅(白泰雄·43). 1992년 ‘해방 후 최대 규모의 자생적 사회주의 혁명조직’(국가안전기획부 발표)인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로맹) 중앙상임위원장으로 구속 기소돼 1심 재판에서 사형 구형에 무기징역까지 선고받았던 인물이다. 1980년대 학생운동의 대표적 급진세력이었던 그였지만 이제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그는 현재 캐나다 서부 최고 명문인 브리티시컬럼비아대(UBC) 로스쿨 교수로 국제인권법과 한국법 강의를 맡고 있다. 법을 부정했던 그가 법을 가르치고 있는 것. 그 스스로 ‘법에 대한 투쟁(Fighting against Law)’이 아니라 ‘법을 위한 투쟁(Fighting for Law)’을 한다고 말한다. UBC와 고려대 법대의 ‘공동 법학석사(LL.M.) 프로그램’ 설립을 추진하기 위해 26일 서울에 온 그를 만나 ‘법’과 ‘세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과거의 ‘백 위원장’은 법에 저항했고 지금의 ‘백 교수’는 법을 옹호하고 가르치는 역할을 하는데, 백 교수에게 법은 무엇입니까.

“과거의 법은 사람들을 지배하고 통제하기 위한 수단이었습니다. 정권은 법을 통해 국민을 제압하려 했고, 그 법을 따르는 것은 정당성이 없는 권력에 추종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제는 법의 개념이 달라졌습니다. 법은 통제의 수단이 아니라 사회적 합의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법은 지키고 옹호해야 할 대상이죠.”

―백 교수의 말씀은 독일 등 대륙법계 국가의 ‘법치국가 원리’와 영미법계 국가의 ‘법의 지배’의 차이와 연결되는 것 같습니다. 둘 다 국가권력이 법에 의해 지배된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독일 법치주의는 ‘법’의 실질적 내용을 문제 삼지 않고 다만 법으로서의 형식적인 외형만 갖추면 됩니다. 반면 ‘법의 지배’에서의 ‘법’은 이성에 근거한 합리적이고 타당한 법만을 의미하죠.

“그렇습니다. 독재자가 자기에게 유리한 법을 제정해 국민을 지배하면 그것은 ‘인(人)의 지배’이지 ‘법의 지배’가 아닙니다.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이 있는데 ‘법의 지배’의 정신에 비춰보면 악법은 법이 아니죠. 악법이 없도록 하는 것, 악법도 좋은 법으로 만들려고 하는 노력이 바로 법의 지배의 정신입니다.”

백 교수는 2003년 UBC에서 처음으로 ‘아시아인권법’ 강의를 개설했고 2004년부터는 ‘한국법’ 강좌도 개설해 외국 학생들에게 한국의 법과 법체계 전반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외국에서 한국법을 가르치는 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캐나다는 한국 이민자의 수가 최근 급증하고 자유무역협정 체결로 무역거래도 크게 늘어날 것입니다. 당연히 법률문제도 많아질 것이고 그에 대비해 한국과 캐나다 모두 상대방의 법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합니다. 좀 더 근본적으로는 한국이 ‘한반도에서 탈피하는’ 길이기도 합니다. 한국도 이제 한반도를 넘어 세계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는데, 한국법 강좌도 그런 고민의 소산입니다. 지금 미국을 포함해 북미 전역에 정식 한국법 강좌가 하나도 없습니다. 이번에 UBC 로스쿨 메리앤 보빈스키 학장을 모시고 한국을 방문하게 된 것도 북미 최초로 UBC에 정식 한국법 강좌를 개설하기 위해서입니다. 한국법 석좌 기금교수직을 만들기 위해 국제교류재단 및 몇몇 로펌과 협의 중입니다.”

―올 초 백 교수께서 한 국제세미나에서 “한국의 진보세력도 북한인권 문제를 거론할 때가 됐다”고 발언했다는 외신이 보도돼 파장이 컸는데….

“발언의 전체 맥락보다는 어느 한 부분이 강조돼 보도된 것 같습니다. 예민한 문제라서 말하기 어렵지만, 한국은 북한인권 문제도 너무 한반도 중심의 세계관에서 접근하는 것 같습니다.”

―법 이외에 백 교수의 과거 일에 대한 생각을 알고 싶은 사람이 많을 것 같습니다.

“언젠가 적당할 때 말씀을 드릴 기회를 갖도록 하겠습니다.”

―한국에 돌아와서 정치를 하실 생각은….

“제가 있어야 할 곳은 한국입니다. 내년쯤 UBC의 한국법 프로그램을 정착시키고 돌아오고 싶습니다. 그러나 정치는 아닙니다. 가르치는 일을 하려고 합니다.”

이수형 기자 so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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