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직 뉴라이트닷컴 인터뷰 전문

  • 입력 2005년 11월 4일 12시 14분


코멘트
안병직 서울대 명예 교수. 동아일보자료사진
안병직 서울대 명예 교수.
동아일보자료사진
다음은 뉴라이트 닷컴에 올라온 안병직 서울대 명예 교수의 인터뷰 전문.

▶ 최근에 뉴라이트 네트워크 고문직과 북한인권 국제행사 공동대회장을 맡으셨습니다. 한동안 상당히 말씀을 아껴오셨는데, 최근 대외적 활동의 폭을 넓히게 된 계기가 있으신지요?

- 한국의 현대사적 과제는 2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가 선진화, 즉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 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북한문제입니다. 현재 한국은 휴전선 이남으로 되어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한반도 전체를 포괄하는 문제라 할 수 있지요. 흔히 이것을 통일문제라고 하는데, 자칫 큰 착오에 빠질 수 있습니다. 마치 통일을 할 수 있는 조건이 갖추어진 것처럼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통일은 의식이나, 경제적ㆍ지적 수준 등에서 남북간의 동질성이 확보되어야 가능하지만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은 상황이거든요.

- 현재 북한은 김정일체제하에서 인민들이 노예화되고 있는 만큼 북한문제 해결의 기본방향은 김정일체제를 청산하는데 있습니다. 김정일체제 청산없이 북한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은 없다는 겁니다. 지금 당장 김정일체제를 청산하기 위해서는 군사력을 쓰는 수밖에 없지만 이는 남북한 모두에게 상처가 될 뿐이고, 그래서 장기적인 변화를 유도하기 위해 개혁개방을 추진하고 있지만 북한의 집권세력이 개혁개방의 길로 나올 가능성은 전혀 없습니다. 결국 북한 주민들하고 손을 잡아야 하는데 인민들의 문제는 곧 인권문제거든요. 결국 북한문제의 해결방안은 인권문제일 수밖에 없는 겁니다. 때문에 저는 한국 현대사의 하나의 과제로서 북한 인권문제, 탈북자 문제, 이런 것에 대해서 적극 대응해야 한다고 본 겁니다.

▶ 얼마 전 정동영장관이 영토조항 검토를 시사하는 발언을 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북한문제가 한반도 전체를 포괄하는 문제라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영토조항 수정은 문제가 있다는 말씀이신가요?

- 글쎄요, 대한민국 헌법에서 영토조항이 어떤 의미를 갖느냐 하는 것은 좀 더 따져봐야 할 문제입니다. 법리적인 이해가 부족한 상황에서 영토조항 문제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적절치 않을 듯 합니다. 하지만 북한의 실체를 인정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죠. 문제는 북한의 실체를 인정한다는 것과 현재 북한 집권세력의 존재와 정당성을 그대로 인정하는 문제는 별개라는데 있습니다. 김정일체제의 정당성을 인정한다면 유일사상과 핵ㆍ미사일 개발, 선군정치 등을 모두 인정하는 셈이기 때문이지요. 북한의 인권 탄압과 기아 문제는 김정일체제에서 비롯된 객관적 산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김정일체제를 합법적 지배체제로 인정할 수 없는 것이구요.

북한의 '강성대국' 노선은 개혁ㆍ개방에 대한 부정

▶ 햇볕정책 또는 평화번영정책으로 일컬어지는 대북 유화정책의 논리적 토대 중 하나는 북한에게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것입니다. 대북 압박은 전쟁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는 것인데요, 이런 이론적 근거에는 어떤 문제가 있다고 보십니까?

- 대북정책 문제의 첫 번째 문제는 북한 사회의 발전방향에 대한 전망이 틀렸다는 점입니다. 김대중정부로부터 노무현정부에 이르기까지 대북정책의 기본전제는 남쪽이 유화적으로 나오면 북한이 개혁ㆍ개방할 것이라는 것 아닙니까? 북한이 개혁개방으로 나오면 지금의 북한체제는 인정할 수 없더라도, 우리가 원하는 체제로 변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현실은 절대 그렇지 않아요.

- 북한이 개혁ㆍ개방을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계기는 93년에 발생한 기아 문제입니다. 북한에서는 이를 ‘고난의 행군’이라고 하고, 98년에 끝났다고 선언했죠. 그런데 북한이 고난의 행군을 극복하는 수단으로 삼은 것이 바로 ‘강성대국’ 노선입니다. 강성대국을 선택했다는 것은 개혁ㆍ개방을 배제한다는 뜻이죠. 북한에는 개혁ㆍ개방 노선을 배제한다는, 남한의 햇볕정책을 신랄하게 비난한 수많은 문건이 있습니다. 노동신문이나 조선신보만 봐도 알 수 있는 일을 인데, 북한이 개혁ㆍ개방의 길로 나오게 될 것이라고 선전하고 있으니 얼마나 무지한 사람들입니까? 대북정책을 이렇게 호도하는 것은 정권의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것일 뿐 북한의 현실과는 동떨어진 것입니다. 한마디로 대북포용정책은 대북용이 아니라 대남용인 셈이지요.

- 둘째로 북한이 개혁ㆍ개방을 하지 않으면 북한 주민들의 노예화는 필연적입니다. 개혁ㆍ개방을 하지 않는 이상 집단농장 해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죠. 북한에서는 인민들이 모두 수령님의 은덕으로 산다고 선전하고 있고 그 근거는 사유재산을 인정하지 않는 집단농장이거든요. 북한이 그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농지정리사업을 계속 해오고 전 국토가 수령님의 국토로 변했다고 선전하는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남한 정부의 대북정책을 찬성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원조에 연명하는 북한정권, 주체성은 어디갔나?

▶ 정동영 통일부장관은 오히려 북한 인권문제가 잘 해결되고 있다고 말합니다. 휴전이후 작년까지 방북한 사람 숫자보다 올해 방북한 사람 숫자가 더 많다면서, 이렇게 남북 교류가 확대되면 북한도 필연적으로 개혁개방으로 갈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 개혁ㆍ개방이라는 것이 결국 경제문제 아닙니까? 경제교류가 성공적이라면 대북사업이 본궤도에 올라갔다는 증거가 있어야 합니다. 즉, 대북사업에서 이익이 발생해야 한다는 것이죠. 과거 10년간의 대북사업에서 제대로 영업을 했다는 기업이 단 한 개라도 있다면 제가 틀렸다고 인정하겠습니다. 하지만 영업실적을 내기는커녕 망했다는 경험만 산더미 아닙니까? 무엇이 정상화됐고 어떤 점에서 개혁ㆍ개방이 진행되고 있다는 말인지 알 수 없습니다.

- 또 한가지, 북한이 개혁.개방을 한다면 이는 북한의 필요와 능력에 따른 것이어야 합니다. 지금 북한은 전부 한국 기업에게 해달라고 하고 있잖아요. 자신들의 국토를 스스로 관리하지도 못하고 외부 기업에 맡기는 나라가 정상입니까? 그 사람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주체성은 도대체 어디 간 겁니까? 그 뿐만이 아닙니다. 지금 북한은 중국과 한국, 국제기구의 원조에 의존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북한은 종속경제체제인 셈이지요. 주체성을 갖고 개혁ㆍ개방의 길을 간다면 그에 따라서 경제적 자립도도 점차 높아져야 합니다. 한국이 지금의 경제발전을 이룬 것도 경제 자립도가 높아졌기 때문이잖아요. 도대체 뭐가 주체적이고 뭐가 민족적이라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 다른 곳은 몰라도 개성공단의 경우에는 전기나 도로, 운반 등 모든 인프라를 한국에서 제공하기로 했는데, 이 정도의 인프라가 구축돼 있다면 경협의 성과를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요?

- 안됩니다. 노동력 공급을 원활히 할 수 없기 때문이죠. 개혁ㆍ개방이라는 것은 저임금체제 속에서 대외거래를 함으로써 경제적 이익을 획득하는 방법입니다. 제대로 된 개혁ㆍ개방, 즉 영업이익을 내려면 북한의 노동력 관리를 한국 기업이 맡아야 하는데 북한은 인력관리 권한을 넘겨주지 않습니다. 김정일로서는 북한의 사정이 국제사회에 알려지는 것을 원치않을 뿐 아니라, 인민들을 팔아서 먹고 산다는 비난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점차 높은 임금을 요구하게 되겠죠. 기업으로서는 노동력에 대한 임금을 지불하면서 인력 관리도 못하는데 영업이 될 리가 없구요. 북한은 경협이 아니라 이를 미끼로 해서 남한 정부에 다른 원조를 받는데 목적이 있는 겁니다. 북한은 본질적으로 노동력을 팔아서 경제를 유지시키려는 정책을 취하고 있지 않고 있고, 따라서 개혁ㆍ개방도 이뤄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정동영장관은 대북지원 확대에 앞서 분배 투명성 증명해야

▶ 인권문제 해결 방안과 관련한 문제인데요, 북한에 충분한 식량을 지원해줌으로써 탈북자가 발생하지 않는 것이 우선이라는 정동영장관의 발언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외부 지원으로 실질적 혜택이 돌아가도록 다른 데로 전용되지 않는다는 것이 전제조건이 돼야 합니다. 이런 이유로 국제기구에서 물자를 원조할 때는 인력을 파견해서 분배 투명성을 검증하지요. 하지만 최근 북한은 이같은 검증을 거부했을 뿐 아니라 파견된 인사들까지 모두 철수시키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북한이 배급된 물자를 인민에게 전달할 의사가 있다면 굳이 이럴 이유가 없지요. 배급물자를 본래의 목적에 사용하지 않고 전용하고 있다는 국가적 의사표시인 셈이지요. 지금 북한의 최대 목표가 핵과 미사일 개발인데 이쪽으로 악용되지 않는다고 어떻게 보장합니까? 게다가 김정일과 주변 인사들은 인민들과 대조적으로 너무 호화판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오히려 정동영장관에게 물어보고 싶습니다. 식량지원이 전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어떻게 보장할 것이며, 북한 주민들과는 너무나 대조적인 김정일의 호화로운 생활에 대해서는 어떻게 설명할 거냐고 말입니다.

- 저는 북한의 기아문제가 심각하다는 얘기를 듣고는 휴전선 근처에도 가질 않습니다. 금강산 관광 같은 건 생각조차 하질 않지요. 기분이 이상해질 것 같아서 말입니다. 북한 주민들이 굶어죽고 있다는데 거기에 가서 노래하는 사람은 도대체 어떤 심정일지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과거 우리가 노동운동과 사회주의 운동을 했던 것은 굶주렸던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것이었는데... 저는 제 인생의 가장 중요한 도덕적 명제를 성경에서 얻었습니다. 정확한 구절은 잘 모르겠지만, “네 이웃에 하느님이 계신데 어디에서 하느님을 찾느냐”는 내용이지요. 우리 이웃이 저렇게 고통스러운데 어디에서 사상을 찾고 있는 겁니까? 사상의 본질은 결국 인간입니다. 주위의 이웃을 불행하게 하는 사상이라면 존재가치가 없는 겁니다.

지배 이데올로기로서의 민족주의는 반동이다

▶ 김정일위원장의 ‘우리 민족끼리’라는 구호가 한국내에서 상당히 반향을 얻으면서, 북한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는 상황이 되어 버린 것 같습니다. 한국사회에 팽배한 민족주의의 근원은 무엇이고 문제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 주권을 상실하고 식민지를 경험했던 국가라면 민족주의가 이데올로기로서 호소력을 갖게 마련입니다. 중요한 것은 민족주의가 제국주의 지배에 대한 저항운동으로서는 성공적이었지만, 민족주의만으로 근대국가를 건설한 나라는 없다는 사실입니다. 즉 민족주의란 국민을 단결시키는 수단으로서만 유효하다는 것이지요.

- 중국의 인민혁명운동도 엄밀히 말하면 민족주의운동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마르크스는 민족주의를 전혀 인정하지 않았고, 최초로 국제공산주의운동에서 민족감정을 이야기한 것은 스탈린입니다. 2차 대전 당시 독일의 침략을 받고 ‘슬라브 민족의 단결’을 외쳤으니까요. 스탈린만 해도 민족주의가 반동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민족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하지는 않았지요. 이런 민족주의를 사회주의 이론에 접목시킨 것이 바로 모택동의 모순론입니다.

- 모택동은 기본 모순을 계급모순과 민족모순으로 구분하고 상황에 따라 주요 모순이 달라질 수 있다고 봤습니다. 공산주의 이론에서 민족주의가 대두된 것은 1937년 중일전쟁을 계기로 민족모순을 제1 모순으로 내세워 국민당과의 합작을 시도한 것이 최초인 셈입니다. 실은 당시 국민당과의 전투에서 불리했던 중국 공산당이 대일 연합전선을 구축하고, 그 틈바구니에서 세력을 확장하려는 것이 본래 목적이었지만, 어쨌든 이를 계기로 민족주의가 대제국주의 투쟁에 있어 강력한 무기가 된다는 것이 이론적으로 확립된 것입니다.

- 영국이나 프랑스 등 선진 자본주의의 경우에도 민족주의는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는 국민 통합을 이루는 정책으로서의 민족주의였을 뿐 대외적으로는 항상 국제주의를 채택하고 있었지요. 즉, 국제주의를 전제로 한 민족주의인 것입니다. 국력을 세계로 뻗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로서 민족주의는 국제주의의 하위사상에 머물렀을 뿐입니다. 민족주의가 국제주의를 배제하고 등장한 것이 이태리의 파시즘, 독일의 나찌즘, 일본의 군국주의입니다. 결국 대외침략으로 세계를 교란시키고 파탄나지 않았습니까?

- 저는 민족주의란 항상 반동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국제주의(internationalism)를 전제로 한 하위개념으로서는 일정한 역할을 하지만, 지배적 이데올로기로 폭주를 하게 되면 반드시 반동적으로 가기 때문입니다. 노대통령이 ‘자주국방’을 강조하지만 EU와 같이 세계가 하나의 지역단위로 묶여가는 판국에 자주국방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 참여정부 출범이후 일본과의 관계가 매끄럽지 않습니다. 최근에는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이유로 연말로 예정되었던 한일 정상회담 일정까지 취소하는 사태에 이르면서 우려도 높아지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지금의 상황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현 정부가 해결될 수 없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문제처럼 부각시켜서, 자신들이 민족주의를 대변하는 세력인 양 국민을 속이고 있는 형국입니다. 예를 들어 독도문제는 역대 정부가 해결될 수 없기 때문에 덮어둔 문제입니다. 솔직히 독도 관련 자료는 일본이 더 많이 갖고 있습니다. 일본은 1905년에 이미 독도에 대한 국제적 인정을 받았기 때문이죠. 우리나라는 현실적으로 영유하고 있는 것 뿐이구요.

- 만일 이 문제가 국제사법재판소로 간다면 당연히 문헌과 증거를 많이 갖고 있는 일본이 이기게 됩니다. 현정부가 이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로 가져가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지요. 고기 하나를 두고 개 두마리가 싸운다고 생각해 봅시다. 한마리가 먼저 고기를 물었다면 얼른 도망가서 먹을 일이지, 고기를 뺏으려는 다른 개를 보고 짖어댄다면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독도문제의 해법은 입을 다무는 것입니다. 우리야 실질적으로 독도를 영유하고 있으니까 답답할게 없거든요. 자꾸 떠들어봐야 오히려 손해날 일을 현정부가 자꾸 논쟁거리로 만드는 것은 비애국적인, 어떤 의미에서는 매국적 행위입니다.

- 야스쿠니 신사참배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야스쿠니에는 전범 뿐 아니라 전쟁 희생자들도 있지요. 사실상 전쟁희생자를 추모하면서 전쟁의 쓰라림을 다시 되새기는 것인지, 전범을 추모하는 것인지는 구별이 안되죠. 일본은 희생자 추모라는 입장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야스쿠니 신사참배 문제가 해결된다 해도 또다른 문제가 대두될 것이고 그럴 경우 일본은 설 자리가 없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또 일본 국민은 물론 일본 정치인들도 야스쿠니 참배에 대해 반대가 많은데 이것은 중국이나 한국의 항의때문이 아니라, 일본의 태평양전쟁으로 500만명에 달하는 일본인 희생자가 발생한데 대한 책임규명 요구에 가깝습니다. 결국 야스쿠니 신사참배 문제는 일본 국민들이 해결할 문제인 것입니다.

- 일본 우경화에 대한 이데올로기 거점을 야스쿠니 신사참배로 잡는 것 역시 잘못입니다. 일본 우경화의 핵심은 헌법구조 변경, 즉 자위대의 법적지위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일본의 헌법개정은 보통국가가 되겠다는 것으로서 자민당이 내세운 전제조건은 첫째 전쟁포기, 둘째 자위대 합법화, 셋째 국제공여, 넷째 자위대 해외 파견시 국회동의 의무화입니다. 이중 우리나라와 관련해 문제가 되는 것은 자위대의 합법화 문제인데, 이것 역시 현재 불법이지만 실질적인 자위권 행사를 용인할 것이냐, 아니면 합법적 틀 내에서 자위대 역할을 규정할 것인가 라는 선택의 문제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것을 단순히 일본의 헌법 개정은 반동이라는 논리에 따라 우경화 운운하는 것은 전혀 일본을 알지 못하고 하는 소리인 것입니다.

-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한국이 선진국으로 가기 위해서는 한일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는가의 문제입니다. 그런데 독도문제나 야스쿠니 신사참배 등 해결될 수 없는 문제를 중심축에 놓는 것은 선진화를 위한 한일관계 구축이라는 본질적 문제를 망각하게 만듭니다. 이렇기 때문에 비애국적, 매국적이라는 말을 하는 겁니다. 국내는 물론 국제정치에서도 아무것도 하는 일이 없는 이 정부는 한마디로 건달정부에요. 뭐든지 다 한다고 말하지만 하는 건 아무것도 없잖아요? 아니 독립국가에서 반일운동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어디에 있습니까? 말로야 통쾌하게 할 말은 했다고 하지만 결과라고 할만한 게 없어요. 민족주의 감정에 호소해서 정권을 유지하려는 음흉한 의도라고 밖에는 해석할 수 없습니다.

근대화 흐름을 거스르는 민족주의ㆍ사회주의 사상이 문제

▶ 선진화에 있어서도 현정부가 별로 한 일이 없다고 보시나요?

- 노무현정부는 선진화와 대북문제에 모두를 잘못하고 있어요.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죠. 첫째는 사상문제입니다. 선진화와 대북문제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사상이거든요. 현정부의 사상은 민족주의와 사회주의입니다. 현정부가 독립운동의 메인스트림을 계승 발전했을지는 모르지만 선진화와는 동떨어진 개념이지요. 선진화의 사상은 국제주의와 자유주의에 있거든요. 현정부에서도 자유주의, 시장경제를 한다고는 하지만 결국 분배를 대변하는 이데올로거들을 등용하지 않습니까? 한국경제는 기본적으로 자급자족이 불가능한 구조이고 경제발전을 하지 않으면 분배를 할 수 있는 펀드가 형성되지 않습니다. 정말 분배를 하려면 성장 정책을 써야 하는 것이지요. 분배할 펀드를 확보한 상황에서 분배냐 투자냐를 고민한다면 모를까 아무것도 없는 빈 손을 갖고 분배를 말하는 것은 국민을 속이는 일입니다. 이것이 바로 민족주의의 모순이지요.

- 두 번째는 능력부족입니다. 한국 경제를 이끌어가는 능력은 밖으로부터 들어옵니다. 박정희정권이 능력이 있었던 것은 박정희를 비롯해 당시 정권에 몸담았던 사람들이 외국에서 교육을 받은 엘리트들이었기 때문이에요. 아직까지 우리나라의 엘리트는 선진국에서 공급될 수 밖에 없는게 현실이거든요. 그런데 지금 정부를 보세요. 물론 해외유학파가 있기는 합니다만, 현정부의 주류는 과거 국내에서 민주화운동을 했던 세력이고, 유학파라고 해봐야 이류, 삼류들 뿐이잖아요. 언젠가 청와대에 있는 누군가가 정책 로드맵이라고 보여주었는데 전부 메모쪼가리 뿐이더군요. 정책은 내용도 중요하지만 정책체계를 만드는 일이 가장 핵심입니다. 정책은 방향을 정하고 예산을 포함한 모든 힘을 집중시켜야 하는 것인데, 안 하는게 없이 일만 벌려만 놓으니 체계가 잡힐 리가 있겠어요? 아이디어의 쓰레기통에 불과합니다.

▶ 내년 예산안만 보더라도 복지분야는 2배 이상 늘어나는데 SOC 투자는 오히려 줄었더군요.

- 이 정부는 지금이 불황인지 아닌지도 인식을 못하지 않습니까? 얼마나 무능한지 알만한 일이죠. 이번 선거에서 지고도 반성을 못하고 있잖아요. 원래 재생의 가능성이 있어야 반성도 되는 거죠. 반성을 못할 정도로 능력이 없는 겁니다.

▶ 개선의 여지는 없을까요?

- 사고가 안 나도록 기도하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 선생님께서는 현정부의 사상적 기초가 민족주의와 사회주의라고 하셨지만, 일반 국민들은 이를 잘 모를뿐더러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인데요?.

- 박정희 경제정책 모델의 핵심은 ‘수출입국’이었습니다. 국제관계속에서 한국을 발전시키는 것이지요. 권위주의적 정치체제에 대한 비판이 있기는 하지만, 형식적 민주주의가 완전히 배제된 형태는 아니었어요. 미국의 통제를 받았던 측면도 있지만 수출입국이라는 국제주의가 정치관계에도 투영되었던게 사실이지요.

- 우리의 대학 현실만 봐도 그렇습니다. 현재 서울대 교수의 80~90%가 유학파입니다. 고려대나 연세대도 마찬가지에요. 한국사회는 국제화 속에서 발전하는 사회라 할 수 있는데 현 정부는 오히려 안으로만 매몰되고 있으니 문제라는 겁니다. '영어를 잘하면 친미'라는게 말이나 됩니까? 현정부가 무능한 이유는 정책의 기본방향이 잘못돼 있기 때문이에요. 한국의 근대화 정책을 비난만 해대니까 아무것도 안되는 겁니다.

▶ 참여정부에 대한 선생님의 비판이 상당히 문제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얼마전 김수환추기경님의 고언도 ‘정파적 발언’으로 매도되었거든요.

- 상관없습니다. 박정희 치하에서도 살아남은 사람인데요 뭘. 사실 그동안 제가 자제했던 것도 현정부 인사들이 모두 제가 너무 잘 아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점점 나라를 망쳐가는 것 같아 말하지 않을 수가 없어요. 현정부 인사들의 가장 큰 약점은 ‘거짓’에 있습니다. 진실을 하나의 지식체계로 발전시키는데도 엄청난 능력이 필요한데 출발 자체가 ‘거짓’이라면 반드시 붕괴될 수밖에 없습니다. 현 정부가, 현정부의 지식인들이 실패한 이유는 바로 진실을 인정하지 않는데 있다고 봅니다.

국제주의ㆍ자유주의 정착시킬 사회운동 일으켜야

▶ 선생님께서 지적하신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노력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그리고 뉴라이트와 자유주의 운동이 해야 할 역할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십시오.

- 한국의 근대사회를 형성해온 사상은 글로벌리즘과 자유주의입니다. 그런데 지금 한국의 지배적 사상은 집권층의 좌파적 사상, 즉 사회주의와 민족주의이구요. 정부의 정책방향과 한국 정치사회의 흐름이 어긋나 있는 셈입니다. 적어도 경제사상적 측면에서는 말이지요. 한국의 근대사회를 형성하고 지탱해온 글로벌리즘과 자유주의, 시장주의가 국민들 속에 자리잡도록 해야 합니다. 올드라이트의 경우에는 경제성장을 달성했다는 공로는 인정되지만 권위주의적 정치체제를 떠받들었다는 점과 자유주의와 시장주의를 스스로 노력해서 얻은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철저하지 못합니다.

- 저는 진정한 자유주의와 시장경제를 정착시키기 위한 사회적 운동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현실에 구체화된 자유주의와 시장주의가 무엇인지 개념 규정이 이뤄져야 해요. 단순히 지식인 운동에 머물 것이 아니라 일반 대중운동으로 발전돼야 하고, 학생, 정당, 종교 등 다방면으로 활동이 전개돼야 합니다. 이들 개별그룹은 독립적인 자기 기반을 갖고 있음을 허용하고 이를 전제로 상호 협력하는 관계가 바람직할 겁니다. 뉴라이트 진영에서도 적극적인 활동이 있길 기대합니다.

▶ 장시간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끝)

제공 : 뉴라이트닷컴(www.new-right.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