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의 ‘검찰 개혁’ 드라이브와 수사지휘권 발동의 전례 마련으로 검찰은 더욱 어려운 처지에 빠질 것으로 보인다.
▽“검찰 개혁 박차”=김 총장은 호남 출신으로 여권 인사들과도 어느 정도 ‘말’이 통하는 사이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 김 총장이 사퇴함으로써 검찰은 그야말로 외톨이 신세가 됐다.
청와대와 여권은 2002년 대선자금 수사 당시 송광수(宋光洙) 총장 체제에 한 차례 덴 데 이어 ‘믿었던’ 김 총장마저 사퇴를 통해 ‘항명’을 함에 따라 검찰에 대한 불신이 더욱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청와대와 여권은 김 총장 사표를 수리하고 후임 총장을 검찰 외부에서 찾을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특히 자신들과 ‘코드’가 맞는 인사를 선택하려 할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여권의 한 인사는 최근의 사태에 대해 “검찰이 스스로를 개혁 대상으로 몰아가고 있다”며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검란(檢亂)’ 재연되나=조직의 수장인 총장이 결과적으로 ‘외풍’에 의해 사퇴함으로써 일선 검사들의 불만과 반발도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이는 여권의 검찰 조직 장악 강화 움직임과 정면충돌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당초 천 장관의 지휘권 수용 여부에 대해 일선 검사들 중 상당수는 “부당한 지휘를 거부하고 총장 직을 계속 수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재경 지검의 한 검사는 “정권 후반기에 접어든 현 정부의 검찰 ‘힘 빼기’ 작업이 가속화될 것”이라고 예견하기도 했다.
검찰의 한 고위 간부는 “김 총장이 사퇴를 놓고 오랫동안 고민한 것도 자신이 물러날 경우 외부에 의한 검찰 개혁이 더욱 거세질 것으로 우려한 때문”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김 총장이 전격 사퇴함으로써 ‘우군’이 없는 고립무원의 검찰은 앞으로 힘든 싸움을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수사지휘 일상화되나=서울중앙지검의 한 간부는 14일 김 총장이 천 장관의 ‘수사지휘’를 수용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아무 할 말이 없다”며 한숨만 내쉬었다.
한 중견 검사는 “이번 사건은 앞으로 정치권이 상시적으로 필요에 따라 검찰 수사권에 제약을 가할 수 있는 선례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번 물꼬가 트인 만큼 정치권의 법무부 장관을 통한 수사지휘가 일상화될 수 있다는 시각이다.
다른 일반 형사사건 피의자들과의 형평성 문제도 검찰이 풀어야 할 숙제가 됐다. 유독 공안사건 피의자만 불구속 수사 원칙을 적용할 경우 이들의 반발이 불 보듯 뻔하기 때문.
따라서 검사들의 수사 환경에도 상당한 변화가 일 것으로 보인다.
조용우 기자 woogija@donga.com
▼검사들 “조직결집 위해 正道걸었다”▼
김종빈 검찰총장 사퇴 소식이 전해진 후 검찰은 정상명(鄭相明) 대검찰청 차장 주재로 수뇌부 회의를 여는 등 긴박한 분위기였다.
검사들은 총장 사퇴에 대해 대체로 “안타깝다”는 반응을 보이면서도 “검찰 조직과 총장 개인을 위해 올바른 결정을 했다”고 평가했다. 총장 사퇴를 만류했던 대검 간부들은 충격과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심야의 간부회의=정상명 대검 차장은 이날 오후 8시 50분 대검 기획관 이상 간부 전원, 서울고검장과 서울 중앙·동부·남부·북부·서부 지검장, 인천·수원 지검장 등 주요 간부들을 불러 긴급 대책회의를 열었다. 이 회의에는 주요 간부 29명이 참석해 밤 12시 무렵까지 수십 가지 대책을 논의했다. 이 회의에서 간부들은 추가 사표와 검사들의 집단 반발을 막을 대책 등에 대해 논의했다고 한 간부가 전했다. 이종백(李鍾伯) 서울중앙지검장은 서울중앙지검에서 간부들과 따로 회의를 했다.
▽“조금 늦긴 했지만 정도를 걸었다”=수원지검의 한 간부 검사는 “사실 14일 오후 대검에서 공식 입장을 발표할 때 총장의 거취 문제에 대해 명시적인 언급이 없어 일선에서는 무척 당황했다”며 “검찰을 위해서나 총장 개인을 위해서 사의를 표명하는 것이 현 상황을 타개하는 정도(正道)였다”고 말했다.
수원지검의 한 평검사는 “만약 총장이 사퇴하지 않았다면 심각한 사태가 빚어졌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며 “총장의 사퇴가 검찰의 내부 결집에는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부장은 “총장 사퇴가 방향은 맞다”면서도 “앞으로 검찰이 안정을 찾아야 하는데 또 다른 갈등과 마찰이 일지 않을까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지휘권 수용은 의견 엇갈려=지방의 한 간부 검사는 “법적으로 장관의 불구속 수사 지휘를 거부할 명분이 없는 만큼 총장이 이를 수용하는 것은 불가피했다”고 말했다.
부산지검의 한 평검사는 “검찰청법에 장관의 지휘권을 규정한 것은 정치적 외압에서 검찰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며 “정치적인 배경에서 나온 장관의 수사지휘는 부당한데도 총장이 이를 수용한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지방의 한 부장은 “검사는 자존심 하나로 살아가는데 총장의 수용 결정은 일선 검사들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남긴 것 같다”고 말했다.
이태훈 기자 jefflee@donga.com
길진균 기자 l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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