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의 앞날은]與圈에 ‘미운털’…독립성 확보 험난

  • 입력 2005년 10월 15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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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겨진 검찰 자존심14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검찰청 앞 건물의 유리창에 비친 대검청사의 모습. 검찰은 이날 천정배 법무부 장관의 지휘권 발동 수용 여부를 놓고 하루 종일 술렁였다. 강병기 기자
구겨진 검찰 자존심
14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검찰청 앞 건물의 유리창에 비친 대검청사의 모습. 검찰은 이날 천정배 법무부 장관의 지휘권 발동 수용 여부를 놓고 하루 종일 술렁였다. 강병기 기자
천정배(千正培)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이 김종빈(金鍾彬) 검찰총장의 사퇴로 이어지면서 검찰이 격랑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여권의 ‘검찰 개혁’ 드라이브와 수사지휘권 발동의 전례 마련으로 검찰은 더욱 어려운 처지에 빠질 것으로 보인다.

▽“검찰 개혁 박차”=김 총장은 호남 출신으로 여권 인사들과도 어느 정도 ‘말’이 통하는 사이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 김 총장이 사퇴함으로써 검찰은 그야말로 외톨이 신세가 됐다.

청와대와 여권은 2002년 대선자금 수사 당시 송광수(宋光洙) 총장 체제에 한 차례 덴 데 이어 ‘믿었던’ 김 총장마저 사퇴를 통해 ‘항명’을 함에 따라 검찰에 대한 불신이 더욱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청와대와 여권은 김 총장 사표를 수리하고 후임 총장을 검찰 외부에서 찾을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특히 자신들과 ‘코드’가 맞는 인사를 선택하려 할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여권의 한 인사는 최근의 사태에 대해 “검찰이 스스로를 개혁 대상으로 몰아가고 있다”며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검란(檢亂)’ 재연되나=조직의 수장인 총장이 결과적으로 ‘외풍’에 의해 사퇴함으로써 일선 검사들의 불만과 반발도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이는 여권의 검찰 조직 장악 강화 움직임과 정면충돌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당초 천 장관의 지휘권 수용 여부에 대해 일선 검사들 중 상당수는 “부당한 지휘를 거부하고 총장 직을 계속 수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재경 지검의 한 검사는 “정권 후반기에 접어든 현 정부의 검찰 ‘힘 빼기’ 작업이 가속화될 것”이라고 예견하기도 했다.

검찰의 한 고위 간부는 “김 총장이 사퇴를 놓고 오랫동안 고민한 것도 자신이 물러날 경우 외부에 의한 검찰 개혁이 더욱 거세질 것으로 우려한 때문”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김 총장이 전격 사퇴함으로써 ‘우군’이 없는 고립무원의 검찰은 앞으로 힘든 싸움을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수사지휘 일상화되나=서울중앙지검의 한 간부는 14일 김 총장이 천 장관의 ‘수사지휘’를 수용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아무 할 말이 없다”며 한숨만 내쉬었다.

한 중견 검사는 “이번 사건은 앞으로 정치권이 상시적으로 필요에 따라 검찰 수사권에 제약을 가할 수 있는 선례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번 물꼬가 트인 만큼 정치권의 법무부 장관을 통한 수사지휘가 일상화될 수 있다는 시각이다.

다른 일반 형사사건 피의자들과의 형평성 문제도 검찰이 풀어야 할 숙제가 됐다. 유독 공안사건 피의자만 불구속 수사 원칙을 적용할 경우 이들의 반발이 불 보듯 뻔하기 때문.

따라서 검사들의 수사 환경에도 상당한 변화가 일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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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우 기자 woogija@donga.com

▼검사들 “조직결집 위해 正道걸었다”▼

김종빈 검찰총장 사퇴 소식이 전해진 후 검찰은 정상명(鄭相明) 대검찰청 차장 주재로 수뇌부 회의를 여는 등 긴박한 분위기였다.

검사들은 총장 사퇴에 대해 대체로 “안타깝다”는 반응을 보이면서도 “검찰 조직과 총장 개인을 위해 올바른 결정을 했다”고 평가했다. 총장 사퇴를 만류했던 대검 간부들은 충격과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심야의 간부회의=정상명 대검 차장은 이날 오후 8시 50분 대검 기획관 이상 간부 전원, 서울고검장과 서울 중앙·동부·남부·북부·서부 지검장, 인천·수원 지검장 등 주요 간부들을 불러 긴급 대책회의를 열었다. 이 회의에는 주요 간부 29명이 참석해 밤 12시 무렵까지 수십 가지 대책을 논의했다. 이 회의에서 간부들은 추가 사표와 검사들의 집단 반발을 막을 대책 등에 대해 논의했다고 한 간부가 전했다. 이종백(李鍾伯) 서울중앙지검장은 서울중앙지검에서 간부들과 따로 회의를 했다.

▽“조금 늦긴 했지만 정도를 걸었다”=수원지검의 한 간부 검사는 “사실 14일 오후 대검에서 공식 입장을 발표할 때 총장의 거취 문제에 대해 명시적인 언급이 없어 일선에서는 무척 당황했다”며 “검찰을 위해서나 총장 개인을 위해서 사의를 표명하는 것이 현 상황을 타개하는 정도(正道)였다”고 말했다.

수원지검의 한 평검사는 “만약 총장이 사퇴하지 않았다면 심각한 사태가 빚어졌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며 “총장의 사퇴가 검찰의 내부 결집에는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부장은 “총장 사퇴가 방향은 맞다”면서도 “앞으로 검찰이 안정을 찾아야 하는데 또 다른 갈등과 마찰이 일지 않을까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지휘권 수용은 의견 엇갈려=지방의 한 간부 검사는 “법적으로 장관의 불구속 수사 지휘를 거부할 명분이 없는 만큼 총장이 이를 수용하는 것은 불가피했다”고 말했다.

부산지검의 한 평검사는 “검찰청법에 장관의 지휘권을 규정한 것은 정치적 외압에서 검찰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며 “정치적인 배경에서 나온 장관의 수사지휘는 부당한데도 총장이 이를 수용한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지방의 한 부장은 “검사는 자존심 하나로 살아가는데 총장의 수용 결정은 일선 검사들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남긴 것 같다”고 말했다.

이태훈 기자 jefflee@donga.com

길진균 기자 l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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