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 100주년 기념 ‘국제 한국학 포럼’ 전문가 좌담

  • 입력 2005년 7월 16일 03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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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의 한국학 전문가들은 언어와 문화 연구에 그치는 해외 한국학의 저변을 넓히기 위해 한국 정부와 대기업이 적극적인 관심을 보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왼쪽부터 신기욱, 한전첸, 이종화, 도널드 베이커, 제임스 루이스 씨. 이종승 기자
해외의 한국학 전문가들은 언어와 문화 연구에 그치는 해외 한국학의 저변을 넓히기 위해 한국 정부와 대기업이 적극적인 관심을 보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왼쪽부터 신기욱, 한전첸, 이종화, 도널드 베이커, 제임스 루이스 씨. 이종승 기자

《고려대가 14, 15일 주관한 ‘국제 한국학 포럼’은 개최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크다. 한류 열풍을 타고 아시아에서는 한국학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는 추세이지만 유럽에서는 한국학과가 없어지거나 축소되는 등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14일 오후 고려대 안암캠퍼스 100주년 기념 삼성관에서 미국 영국 캐나다 중국의 한국학 전문가 5명이 좌담회를 가졌다. 이들은 “지금이 바로 위기이자 기회”라며 “한국 정부와 대기업이 장기적인 안목으로 해외 한국학 연구에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할 때”라고 입을 모았다.》

▽이종화=영국 옥스퍼드대의 한국학과 폐지 위기 등이 알려지면서 해외 한국학의 미래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다. 실제로 해외에서 한국학 연구의 위치는 어느 정도인가.

▽제임스 루이스=상당히 어려운 게 사실이다. 유럽의 아시아 연구는 전통적으로 동북아 지역보다는 중동 지역에 대한 연구에 치중했다. 유럽은 한국인 교포나 이민 세대의 층이 얇아 한국학에 대한 수요가 적다.

▽신기욱=미국에서의 한국학은 상당히 아이러니한 위치에 놓여 있다. 미국은 냉전구도 속에서 아시아 지역의 헤게모니 장악을 위해 아시아를 활발히 연구했다. 1990년대 들어 동북아 지역학이 어려움을 겪은 이유는 사실 냉전시대의 필요성이 급감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9·11테러가 터지면서 중동 지역이긴 하지만 다시 아시아에 대한 관심이 급증했다. 최근 한국학에 대한 관심의 급증은 사실 남한보다는 중동 이후 잠재적 적국인 북한에 대한 관심이 늘어난 탓이 크다.

▽도널드 베이커=UBC가 있는 캐나다 밴쿠버는 아시아인이 많이 거주한다. 한국인도 4만 명이 넘는 것으로 안다. 경제발전과 함께 한국은 캐나다의 주요한 무역 파트너로 성장했다. 대학이나 학문도 결국 수요에 의해 결정되는 점을 감안하면 이런 배경이 캐나다에서 한국학 성장의 밑거름이 됐다.

▽한전첸=최근 중국에서의 한국학 열풍은 엄청나다. 현재 교육부에 정식 등록된 24곳을 포함해 중국 대학의 한국학과는 40군데가 넘는다. 수요도 엄청나 어떤 대학은 한국학과 학생이 1000여 명인 곳이 있다. 이는 첫째 한류의 영향이다. 두 번째는 한국학과 졸업생의 취업률이 좋다. 한국과의 교류가 확대되며 한국 관련 회사가 늘어나면서 거의 100% 취직이 되다 보니 자연히 한국학과 지망생이 늘었다.

▽이=지역마다 편차가 있는 것 같은데 한국학을 발전시킬 방안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 것 같다.

▽한=중국 13억 인구 중 6분의 1에 해당하는 2억 명의 시청자가 매일 한국 드라마를 본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내 아내만 해도 한국드라마 ‘보고 또 보고’ ‘인어아가씨’를 거의 외울 정도로 반복해서 본다.(웃음) 여기에 30만 명의 한국인이 중국에 거주하고 있다. 한국학이 뿌리 내릴 토양은 충분히 갖춰졌다고 본다. 문제는 이런 토양을 어떻게 한국학 정착으로 연결시키는가 하는 문제인데…. 현재의 한국학은 언어와 문화 쪽에만 치중된 경향이 있다. 제대로 발전하기 위해선 역사, 인문학이나 사회과학이 함께 발전해야 하는데 그 부분은 여러 가지 면에서 쉽지가 않다.

▽신=공감한다. 하지만 오히려 그래서 지역마다 특색 있는 한국학 발전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동안 한국학의 목표가 한국학이 세계에 알려지고 퍼져 나가는 것이었다면, 이제는 정착과 발전을 도모할 시점이다.

▽루이스=맞는 얘기다. 하지만 한국학에서 역시 언어와 역사는 가장 중요한 기본이다. 한국을 연구하면서 한국말을 모른다면 논리적으로 맞지 않거니와, 기초도 없이 다른 분야에 뛰어드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

▽이=분위기 전환을 위해 도발적인 질문을 해 보자. 그러면 한국학의 정착 또는 발전을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각 나라의 한국학 토양이 서로 다르지만 지금과 같은 토론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한국학 학자의 커뮤니티를 만드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일 것이다.

▽베이커=중요한 지적이다. 그러기 위해 우리가 여기 모인 것 아닌가.(웃음) 거기에 재정적 지원을 하나 더 꼽고 싶다. 사실 그간 한국국제교류재단이 나름대로 한국학 정착을 위해 노력한 점은 높이 사지만 중국이나 일본에 비해 규모나 범위가 너무 협소하다. UBC는 그나마 캐나다에서 한국의 지원이 원활한 편인데도 상당한 재원 부족을 겪고 있다. 밴쿠버를 제외한 다른 지역은 한국학은커녕 한국어 교육이 전무하다.

▽루이스=한국국제교류재단에만 지원을 의존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이제는 한국의 대기업이 나서야 할 때이다. 한국 대기업은 이미 세계적인 기업의 반열에 올라 있다. 일본은 이런 대기업이 나서서 해외 대학과 산학연계를 맺고 투자하고 있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최근 한국 기업도 해외 광고에 심혈을 기울이던데 축구 스폰서나 매체 광고는 한계가 있다.

▽신=미국의 경우엔 한국 기업의 지원도 상당히 많이 들어온 상태다. 그러나 장기적인 안목에서 본다면 너무 광고시장을 늘린다는 개념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이제는 좀 더 전략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홍보를 해야 할 때이다. 정부 역시 마찬가지다.

▽이=모두 한국학이라는 큰 테두리 안에서 함께 모이긴 했지만 앞으로 각자 한국학과 관련해 어떤 연구를 해나갈 것인지 궁금하다.

▽루이스=최근 조선시대 경제사에 대한 관심이 많아 지속적으로 연구 중이다. 그런데 사실 자료가 제대로 데이터화돼 있지 않아서 어려움이 많았다. 5년 전부터 준비했는데 이제야 어느 정도 연구에 필요한 데이터가 모였다.

▽한=단순한 한류 열풍이 아닌 체계적인 한국 문화를 연구하려 한다. 특히 1970년대와 80년대의 한국 문학에 관심이 많은데 아직은 출발 단계이다. 좀 더 깊이 있게 체계화가 이뤄진다면 이 시기의 중국 문학과의 비교가 가능할 것으로 기대한다.

▽신=사회과학적 측면에서 보면 한국은 정말 좋은 연구 재료이다. 과거 역사뿐만 아니라 현대사를 보더라도 이렇게 다양한 체제와 변화가 존재하는 곳은 세계에서 흔치 않다. 이런 한국적 상황을 감안해 개념화와 이론화를 통한 한국 사회학의 독창적 특성을 찾는 데 주력하고자 한다.

▼참석자 프로필▼

○이종화(李鍾和)

고려대 정경대 경제학과 교수. 고려대 국제한국학센터 소장. 호주 국립대 아시아태평양연구소 교수

○신기욱(申起旭)

미국 스탠퍼드대 사회학과 교수. 스탠퍼드대 국제연구소(SIIS) 아시아태평양연구센터 한국학 담당 소장

○제임스 루이스

영국 옥스퍼드대 한국학과 교수. 한국국제교류재단 한국사학연구 담당 교수

○도널드 베이커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UBC) 아시아학과 한국학 교수. UBC 한국학연구센터 소장

○한전첸(韓振乾)

중국 베이징(北京)대 한국학과 교수. 중국한국교육연구학회 부회장. 중국인민대외우호협회 한국담당 이사

정리=정양환 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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