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칼럼]윤남순/내가 ‘A ’를 못주는 이유

  • 입력 2003년 7월 4일 18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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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남순
대학은 벌써 기말고사가 끝나고 여름 방학을 시작했다. 방학이 시작되면 학생들의 전화나 방문을 집중적으로 받곤 한다. 성적 때문이다.

장학금을 받기 위해서, 다른 대학에 편입하기 위해서 등 나름대로 간절하고 절박한 사정을 앞세워 성적을 올려줄 수 없느냐는 부탁들이다. 그래도 이런 부탁은 이해할 만하다. 때로는 1점을 더 올려달라고, 그래서 A+를 만들어달라는 부탁도 있다. 어떤 학생은 70점대의 점수를 받고도 묵묵히 수긍하는데, A로도 만족하지 못하고 점수를 더 올려달라니 이런 학생은 얄밉기까지 하다. 물론 대답은 한결같이 ‘No’다.

왜냐하면 한 학생이 받은 성적은 한 학기 동안 그 학생의 노력에 대한 정당한 평가이고, 이 평가에 나는 공정과 최선을 다하기 때문이다. 친분이 있다고, 또는 개인의 특수한 사정 때문에 시험 평가의 공정성을 해치는 것은 대학이 사수해야 할 근본 가치를 뒤흔드는 일이다. 우리 사회에서 룰이 지켜지는 곳이 얼마나 될까. 이 사회에서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는 곳, 할 수 있어야만 하는 곳이 대학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리고 당장의 성적 몇 점이 중요할 수도 있겠지만, 어릴 때부터 개인의 능력을 선별해 길러주는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우리 교육상황에서 대학의 평가마저 사람들 입맛대로 해버린다면 어쩔 것인가. 그래서 학생이 자신의 능력에 대해 한없이 오판하게 하고, 그래서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늦어버린 다음에야 자기 능력이 자신이 선택한 일에 적합하지 않음을 알게 된다면 그 책임은 누가 져야 할까.

나는 객관적이고 공정한 평가가 자신의 능력을 점검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고, 또 한순간의 불쾌감과 당혹감이 인생에서 돌이킬 수 없는 실패를 만나는 것보다는 훨씬 경제적이라고 생각한다.

성적이라는 것에만 매달려 자신을 평가하는 데 익숙한 학생들에게 말하고 싶다. 시험을 잘 볼 수 있는 지적 능력은 성공의 많은 요소들 중 하나일 뿐이라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다른 많은 보배들을 찾아내라고. 나는 이런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학생들에게 자신의 능력 이상으로 점수를 주어 그들의 미래를 그르치고 싶지는 않다.

윤남순 한남대 법대 강사·대전 유성구 추목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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