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쉰들러' 브레이즈델씨 보육원 방문

  • 입력 2001년 1월 27일 18시 30분


27일 경기 양주군 장흥면 한국보육원을 찾은 브레이즈델씨를 황온순원장이 맞이하고 있다.
27일 경기 양주군 장흥면 한국보육원을 찾은 브레이즈델씨를 황온순원장이 맞이하고 있다.
27일 경기 양주군 장흥면 한국보육원은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다.

1950년 12월 전쟁고아 1000여명을 제주도로 피란시켜 이듬해 한국보육원 설립의 모태를 만든 러셀 브레이즈델(91·미국 뉴욕 거주)이 50년 만에 한국을 방문해 보육원을 찾은 것.

51년 제주도에 한국보육원을 세운 황온순(黃溫順·101)원장이 건강한 모습으로 그를 맞이해 기쁨이 더했다.

얼굴을 보자마자 포옹하며 울음부터 터뜨린 두 노인은 서로에게 “모습이 거의 변하지 않았다”는 말을 전하며 손을 맞잡았다. 브레이즈델씨는 “내 평생에 지금처럼 기쁜 순간은 없다”며 황원장의 건강을 물었고 황원장은 “아주 좋다”고 화답했다.

6·25 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7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 한국에서 미 제5공군 군목(당시 중령)으로 활동한 그는 전쟁고아들을 후방으로 옮기고 제주도로 피신시켜 ‘한국판 쉰들러’로 불리는 인물. 전쟁이 끝난 뒤 뉴욕주 공무원으로 일하다가 70년대말 은퇴했으나 그동안 한국방문 기회가 없었다.

브레이즈델씨는 또렷하게 당시 상황을 기억했다. “서울 수복 다음달인 10월 전쟁고아 1000여명을 종로초등학교 교정에 모아놨는데 북한군이 다시 내려온다는 겁니다. 결국 제주도로 피란해야 했는데 차도, 배도 없었지요.”

1950년 12월20일 종로에서 인천 김포 제주도로 이어진 닷새간의 피란길은 고난의 행군 그 자체였다. 트럭 14대를 빼앗아 타기도 했고 공군기를 동원하기도 했다. 브레이즈델씨는 그 어려운 일을 어떻게 할 수 있었느냐는 질문에 “그냥 벌어진 일이었다. 군대도 시민도 피란가는데 고아들도 당연히 피해야 했다”며 “그 일을 하며 행복했다”고 답했다.

이 피란길을 함께 했던 배학복(裵學福·87)할머니는 “얼마나 추웠던지 생후 1년된 아기가 동사해 시신을 제주도까지 안고 가기도 했다”고 말했다.

‘제주도 공수작전’으로 불리는 당시의 사건은 50년대 중반 록 허드슨 주연의 ‘전송가(戰頌歌)’라는 영화로 제작돼 TV에서 수차례 방영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영화에 브레이즈델씨의 활약상은 포함돼 있지 않았다.

반백이 된 당시의 전쟁고아 20여명도 아침부터 보육원을 찾아 점심을 함께 들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이강훈(李康勳·67)씨는 “그 엄동설한에 먹을 것도 없이 서울에 남겨졌더라면 틀림없이 죽었을 것”이라고 말했고 양윤학(梁潤鶴·68)씨는 “목사님이 유달리 어린 아이들을 예뻐했던 모습이 기억에 선하다”고 말했다.

이들 전쟁고아 중에는 스님이 된 사람도, 화가가 된 사람도 있다. 이들은 직접 그린 그림과 탱화집 등을 브레이즈델씨에게 전달했다. 이날 한 스님이 전달한 탱화집에는 “존경하는 아버지 브레이즈델님께”라 쓰여 있었다.

<서영아기자>sya@donga.com

▼이희호 여사 접견▼

대통령 부인 이희호(李姬鎬)여사는 27일 6·25 전쟁 당시 미군 군목으로 활동하면서 전쟁 고아 1000여명을 제주도로 데려가 임시수용소(현 한국보육원)에 대피시켰던 브레이즈델씨를 접견했다.

<윤승모기자>ysm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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