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곳 없는 명퇴 은행원…불경기 겹쳐 재취업 막막

  • 입력 2000년 12월 8일 23시 32분


“굳이 은행을 선택할 이유가 사라졌습니다. 정년도 보장 안되고 재직중에도 생계를 걱정해야 합니다. 이제는 퇴직금 가지고 안락한 노후생활을 보낼 수도 없죠.”

최근 은행권의 또 한차례 감원바람으로 직장을 잃은 한 명예퇴직자는 국제통화기금(IMF) 체제 이전만 해도 통했던 3가지 법칙이 모두 깨졌다면서 이처럼 한숨을 내쉬었다. 나이가 어느새 40대에 들어서 다시 직장을 얻기가 쉽지 않다고 판단한 그는 현재 소규모 창업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

자의반타의반으로 직장을 떠난 은행원들이 재취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대다수 명예퇴직자들이 40, 50대의 ‘고령’인 데다 전반적인 경기침체로 일자리를 구하기가 더더욱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올해 하반기 들어 명예퇴직을 실시한 은행은 모두 3곳. 서울은행이 9월말 650명을 내보냈으며 한빛은행과 외환은행이 지난달 각각 1100명과 860명을 감원했다.

이들 은행은 새로운 생계수단을 찾아야 하는 직원들의 재취업을 지원한다는 취지로 재취업센터나 취업지원센터 등을 개설했지만 아직껏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한 상태.

한빛은행 재취업센터 관계자는 “거래처를 비롯한 기업체 7000여곳에 채용을 부탁하는 협조공문을 보냈지만 취업에까지 연결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면서 “퇴직자 나이가 아무리 어려도 35세 이상인데 대부분의 구인업체는 35세 미만을 요구하고 있다”고 전했다.

은행 퇴직자들이 가장 희망하는 재취업 대상은 신규 인력을 선발하는 예금보험공사와 자산관리공사를 비롯한 금융권. 수십년간 쌓아온 경력을 제대로 인정받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직장이기 때문이다. 그밖에 남의 빚을 대신 받아주는 신용정보회사 등에 문을 두드리고 있으나 상당수는 막막하게 앞으로의 생계를 고심해야 할 처지에 놓여있다. 한 관계자는 “재취업을 포기하고 자영업이나 자격증 취득, 이민 등을 선택한 사람들도 상당수”라면서 “명문 대를 나와도 취업이 어려운 판에 퇴직 은행원들이 재취업할 기회가 그리 많겠느냐”고 반문했다.

은행연합회 금융인재취업센터 관계자는 “IMF경제난을 전후해 지금까지 모두 7만5000여명의 은행원들이 퇴직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성동기기자>espr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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