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전세금 감액 청구권에 전전긍긍…인정땐 訴 폭주할듯

  • 입력 1998년 5월 29일 19시 20분


‘임대료를 계약기간중에 깎을 수 있을까’. 임대보증금 ‘감액(減額)청구권’ 때문에 법원이 고민에 빠져 있다.

감액청구권이란 부동산 가격폭락 등 경제사정에 큰 변동이 있으면 임대차계약기간 중이라도 세든 사람이 임대료(보증금)를 낮춰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권리로 민법과 주택임대차 보호법에 규정돼 있다.

주택이나 빌딩은 물론 사무실의 전세금이 폭락하면서 전세금이나 임대료 인하를 요구하는 ‘세입자’가 크게 늘자 법원은 그 파장을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판사들은 감액청구가 법원에서 인정되기 시작하면 비슷한 소송이 줄줄이 벌어져 법원 업무가 마비되고 주거(住居)의 안정성이 무너지는 등 일대 혼란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정부통계에 따르면 95년 현재 세입자 가구는 전체의 46.7%인 6백4만8천여 가구. 이중 10%만 감액청구를 해도 소송건수가 64만여건이나 되는 셈이다. 사무실이나 상가의 경우까지 포함하면 예상되는 소송건수나 액수는 상상을 초월할 것으로 보인다.

법원의 고민은 대법원이 최근 발간한 ‘알기 쉬운 주택임대차’라는 문답집 제작과정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전세 대란’ 해결에 도움을 주기 위한 이 책자의 초고(草稿)에는 ‘(민법과 주택임대차보호법에 보장된 만큼) 제한 없이 감액청구를 할 수 있다’고 돼 있었다. 그리고 감액청구 신청서 견본까지 제시됐다.

그러나 법원은 책자 발간 직전에 이 조항을 ‘판례가 없어 보증금이 얼마나 낮아지면 감액청구가 인정되는지 단정할 수 없다’는 내용으로 수정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전세분쟁을 해결하기는 커녕 감액청구 연쇄반응을 일으켜 혼란만 일어날 것을 우려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무더기 감액청구가 이미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서울YMCA 시민중계실에는 하루 1백50∼2백건의 전세분쟁 상담이 접수되고 있고 이 가운데 절반이 감액청구와 관련된 것이다.

시민중계실 서영경(徐瑩鏡)팀장은 “세입자는 물론 집주인 중에도 ‘보증금을 얼마나 어떻게 낮춰야 하느냐’고 물어오곤 한다”고 말했다. 서울지법 의정부지원의 한 시군법원에도 사무실 임대보증금에 대한 감액청구소송이 접수돼 재판부가 골치를 앓고 있다.

그러나 일부 법조인들은 “하루 빨리 감액청구권에 대한 적극적인 연구와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부형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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