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상객은 커녕 가족이나 친척조차 단 한명도 나타나지 않은 빈소는 처음봅니다』
24일 오후4시반. 인천 중구 신흥동3가 지방공사 인천의료원 영안실.
백범 金九선생 암살범인 安斗熙씨의 시체가 안치된 영안실빈소에는 그 흔한 조화 하나 없었다.
가족 친척도 지키지 않아 썰렁하기만 했다. 찾아오는 사람이 없어 향도 피워지지 않았다.
「고(故)안두희」라고 적어 붙인 安씨의 빈소위에는 영정도 없었고 문상객을 맞는 호상소도 마련되지 않았다. 다른 네곳의 빈소가 문상객들로 붐빈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다만 이날 安씨 옆 다른 빈소의 장례절차를 맡았던 장의사 趙在學씨(42)가 安씨의 빈소에 촛불을 켰다.
趙씨는 『찾아오는 사람도 없는게 너무 딱해 대신 촛불을 켰다』며 혀를 찼다.
영안실의 한 직원은 『이날 아침 한 여자가 安씨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며 조화를 보내오겠다는 전화를 했었지만 조화를 받을 가족이나 친척이 없다고 말한 일이 있다』고 말했다.
安씨의 시체는 이날 오전7시 영안실직원들에 의해 냉동실에서 꺼내져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보내졌으며 부검을 마친후 이날 오후2시경 돌아와 싸늘한 냉동실에 또 다시 들어갔다.
이 병원 李相協원무계장(45)은 『장례를 화장으로 할것인지 매장으로 할 것인지도 모르겠고 만약 내일아침까지 安씨의 부인인 金明姬씨나 미국에 살고 있는 전처 朴모씨나 3남2녀가 오지 않을경우 시청에 연락해 행려처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영안실직원들은 부인 金씨(63)가 사람들을 만나기 싫어 빈소에 나오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安씨 옆 다른 빈소를 지키고 있던 金得韓씨(42)는 『安씨는 자신의 장례식이 이처럼 쓸쓸할 것이라고 미처 생각하지도 못했을 것』이라며 『安씨가 피살로 생을 마감한 것은 어쩌면 역사의 심판인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인천〓朴正奎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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