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민순 편지 읽은 노무현 “기권하면 민망”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0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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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민순 前장관 회고록 증언 파문
송민순, 표결 5일전 육필 호소글 전달 “우리가 결의안 완화한것 北도 알아”
노무현 재논의 지시… 회의 멤버들 불만

 2007년 11월 21일로 예정된 유엔 인권결의안 표결을 5일 앞둔 11월 16일. 송민순 당시 외교통상부 장관은 노무현 대통령에게 A4 용지 4장에 만년필로 자신의 생각을 담아 직접 편지를 썼다. 그는 이를 오후 10시경 대통령 관저로 보냈다. 앞서 이날 노 대통령 주재로 송 장관, 이재정 통일부 장관, 김만복 국가정보원장, 문재인 대통령비서실장, 백종천 대통령통일외교안보정책실장 등 5인이 참석한 회의에서 격론을 벌이고도 결론을 내지 못한 탓이다. 송 장관만 표결 찬성을 주장했고 나머지 각료급 인사들은 남북관계를 고려해 기권하자는 의견이었다는 것이다.

 송 전 장관은 편지에서 “인권결의안 문제는 인권 정책을 넘어 우리가 다른 나라와의 협력을 바탕으로 북한을 국제사회의 일원이 되도록 하는 추진 동력”이라며 “지난해(2006년) 한국이 처음 찬성했을 때도 북한은 소리만 냈지, 필요하면 수시로 한국에 접근해 왔다”고 설득했다. 또 “북한이 우리 주도로 결의안이 많이 완화된 것도 알고 있다”고 말했다.

 송 전 장관은 편지를 쓰면서 ‘왕조시대 상소문을 올릴 때 이런 심정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이 편지를 받은 노 전 대통령은 이틀 후 주무장관회의를 다시 열어 재검토를 지시했다. 노 전 대통령은 편지를 읽은 뒤 “외교부가 여러 나라를 설득해 결의안까지 완화시켰는데 기권하면 민망할 것이다. 그런데 찬성해서 남북 관계에 영향을 줄 위험도 생각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 때문에 18일 일요일 저녁에 다시 회의가 열렸다. 당시 청와대 서별관 회의에 불려온 장관들은 이구동성으로 ‘왜 이미 (기권으로) 결정된 사항을 자꾸 문제 삼느냐’고 불만을 터뜨렸다고 송 전 장관은 회고했다. 당시 외교부 간부였던 한 인사는 “송 전 장관이 결의안 결정 과정에 분개했고 대통령에게 직접 편지를 썼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가 결의안에 기권표를 던지고 6일이 지난 27일 송 전 장관은 이화여대 강연에서 “누구 앞에만 서면 작아진다는 노랫말처럼 북한 문제가 나오면 작아진다”고 유감을 표명했다. 동아일보는 11월 29일자 사설에서 “(송 장관의 증언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중대 발언이다. 노 대통령은 남북 관계를 고려해 기권하라고 했지만 이로 인해 국제사회에서 대한민국의 위상이 추락하고 국민의 자존심도 상처를 입었다”고 비판했다.

 외무고시 9회인 송 전 장관은 미국과 주둔군지위협정(SOFA), 한미 미사일협정 개정 협상에서 미국에 맞서는 배짱을 보여 ‘송 대령(colonel Song)’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대북 접근법에서는 제재 일변도로 북핵을 저지할 수 없다는 의견을 내고 있다.

조숭호 기자 shcho@donga.com
#노무현#송민순#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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