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쾅’… 22년 ‘북핵 탑’ 2초만에 와르르

  • 동아일보
  • 입력 2008년 6월 28일 02시 58분



북한 핵 활동의 상징물로 여겨 온 영변 원자로 냉각탑이 27일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북한의 핵 프로그램 신고와 미국의 테러지원국 해제 절차 착수 이후 만 하루도 안 돼 영변 원자로 냉각탑 폭파 이벤트가 이뤄진 것이다.

○ 역사 속으로 사라진 북핵 상징물

오후 5시 5분(한국 시간) 26m 높이의 콘크리트 구조물인 5MW급 영변 원자로 냉각탑이 커다란 폭발음과 함께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뿌연 연기 기둥이 냉각탑 위쪽으로 뚫린 지름 14m짜리 구멍을 통해 솟구치는가 싶더니 냉각탑은 금세 연기 속으로 사라졌다. 650t짜리 콘크리트 구조물이 무너지기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1∼2초.

연기가 걷힌 곳에서는 구부러진 철근과 콘크리트 조각이 어지럽게 널렸다. 냉각탑 한가운데 우뚝 서 수증기를 내뿜었던 굴뚝은 철근 뭉치를 드러낸 채 아래에서 잘려 나갔고, 냉각탑 상단은 두 동강으로 갈라져 처박혔다. 폭파를 위해 쓰인 다이너마이트의 양은 약 200kg으로 전해졌다.

1986년 말 완공된 영변 원자로는 1994년 10월 북-미 제네바 합의로 가동이 중단됐다. 그러나 2002년 10월 우라늄농축 프로그램(UEP)을 둘러싸고 미국이 중유 50만 t 제공을 중단하자 북한은 국제원자력기구(IAEA) 요원을 추방하고 핵확산금지협약(NPT)에서 탈퇴한 뒤 영변 원자로를 재가동했다.

영변 원자로가 재가동되면서 이 냉각탑에서는 흰 연기가 피어올랐고, 이 장면을 찍은 미국의 위성사진이 공개되면서 북핵 위기는 ‘현재진행형’임이 국제사회에 상기됐다.

○ 불발된 생방송

6자회담 미국 측 차석대표인 성 김 미 국무부 한국과장, 북한 외무성 핵심 인사들, IAEA 관계자들, 북한의 초청을 받은 미 CNN 등 6자회담 참가국 언론사 5곳의 취재진 등은 폭파 현장에서 약 1km 떨어진 곳에 설치된 단상에서 냉각탑 폭파를 지켜봤다. 이들 참관단은 오후 2시경 평양을 떠나 오후 3시 반경 영변에 도착했다.

당초 냉각탑 폭파는 CNN 등을 통해 전 세계에 생중계될 예정이었지만 영변 지역에 위성을 송출할 수 있는 시설이 제대로 안 돼 있어 불발된 것으로 전해졌다. 현장 취재에 참여한 언론사들은 오후 7시경 평양으로 돌아와 냉각탑 폭파 당시의 영상을 순차적으로 각국에 송출했다.

그러나 노동신문, 조선중앙통신 등 북한의 주요 언론들은 영변 원자로 냉각탑 폭파 관련 소식을 보도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 우리 측 설득으로 냉각탑 폭파 성사

냉각탑 폭파는 2단계 조치인 ‘핵 신고 및 핵시설 불능화’ 11개 조치에 포함돼 있지 않았다.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는 지난해 10·3합의 전후로 북한의 김계관 외무성 부상에게 냉각탑 폭파와 함께 CNN 방송을 통해 생중계하는 방안을 설득했다. 그러나 김 부상은 난색을 표했다. 폭파는 불능화(Disablement)가 아니라, 3단계 조치인 해체(Dismantlement)에 해당한다는 게 이유였다.

그러자 당시 6자회담 우리 측 수석대표였던 천영우 전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이 김 부상을 만나 “껍데기만 남아 쓸모도 없는 냉각탑을 폭파하고, 현장 중계하는 것은 북측으로서도 비핵화 의지를 세계에 행동으로 보이는 효과를 가질 수 있다”고 설득했고, 김 부상은 동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불능화 작업과 파괴 비용은 전액 미국 측이 부담한다”고 했다.

○ 한국정부 “핵무기 신고 누락 유감”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핵 신고서에 핵무기와 관련된 상세한 내용이 포함되지 않은 점이 유감스럽다”며 “검증과정과 6자회담을 통해 미흡한 부분이 보완돼야 한다는 게 우리 측 주장”이라고 강조했다. 26일 신고서가 제출된 직후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이 기자회견을 통해 핵무기 미신고에 유감을 표시한 것과 맥이 닿아 있다.

그러나 핵 신고서에 핵무기 관련 세부사항이 담기지 않는 것은 그동안 6자회담 참가국 사이에 사실상 양해가 이뤄진 사안이다. 조지 W 부시 대통령,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도 핵무기 미신고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정부의 잇따른 유감 표시는 강경한 대북정책을 통해 현 정부의 지지세력인 보수층을 결집시키려는 의도로 분석된다.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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