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 리스크도 없는데 수억 연봉 받나”

  • 입력 2008년 4월 17일 02시 55분


정부, 공공기관 CEO 임금체계 개편 추진

오랫동안 민간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를 지낸 이명박 대통령은 공공부문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숨기지 않아왔다. 공기업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금융위원회의 업무 보고에서 산업은행을 겨냥해 “아직도 은행장을 총재라고 부르는 것을 부끄러워해야 한다”며 공기업의 관료주의와 비효율성에 대해 직격탄을 날렸다.

그런 그가 당선 후 고용 안정성 등에 이끌린 대학 주변의 ‘공시족’에 안타까움을 여러 차례 피력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선거 기간 중 한 대학 도서관을 갔는데 대부분의 학생들이 공무원 및 공기업 시험을 준비하더라. 깜짝 놀랐다”고 말하기도 했고, “민간 기업에서 경쟁해야 장래가 있다”고 제안한 적도 있다.

이 대통령의 지시로 본격화될 공기업의 임금체계 개편 작업은 한마디로 공기업 개혁 방향에 대한 그의 ‘CEO 본색’이 그대로 녹아 있다고 볼 수 있다.

○ 공기업 효율성 제고 및 민영화 위한 사전 조치

이번 조치의 핵심은 무엇보다 공기업의 효율성 제고라는 데 이견이 없다.

특히 이 대통령이 13일 취임 후 열린 첫 기자회견에서 “곳곳에 쌓인 먼지와 때를 씻어내 사회 각 부분이 깨끗하고 원활하게 작동하도록 만들겠다”며 공공부문 개혁을 강조한 만큼 ‘실적만큼의 보수’로 공기업의 효율성을 민간 수준에 가깝게 끌어 올리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이 대통령이 국가 예산을 10% 감축하는 등 작은 정부 구현을 위해 공공부문부터 군살을 빼겠다고 한 상황에서 각종 명목으로 고액의 인건비를 챙기는 관행을 더는 방치하지 않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임금체계 개편은 공기업 개혁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 공기업 민영화를 위한 사전 환경 조성의 성격도 있다고 정부 관계자들은 전했다. 실적과 경영 평가에 따라 돈을 받는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 경쟁력이 떨어지거나 굳이 독과점적 지위를 유지할 필요가 없는 일부 공기업을 민영화하기 위해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려는 포석이라는 것.

기획재정부의 한 관계자는 “임금 체계를 개편하면 일부 공기업은 하는 일에 비해 고액 연봉을 받아갔다는 지적을 면할 수 없다. 자연히 ‘경쟁력 상실’이라는 판정을 받아 민영화 대상으로 분류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고 말했다.

○ 금융 공기업이 주요 타깃

정부는 이를 위해 우선 지난해 제정된 공공기관운영법을 개정키로 내부 방침을 정했다.

핵심은 공기업이 각 이사회를 통해 사실상 자신들의 임금을 스스로 정하는 것을 제도적으로 막겠다는 것. 현재까지는 ‘보수책정위원회’(가칭)가 공기업의 이사회를 대신해 경영 평가 등을 토대로 임금 증감 규모를 정하고, 이를 재정부 장관이 위원장인 공공기관운영위원회에서 최종 결정하도록 하는 안이 가장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현재 공공기관운영위는 국무총리실장이 지명하는 공무원 등과 법조계 경제계 언론계 등 20명 이하의 인사들로 구성되어 있으나 각 공기업의 경영 실적을 정밀하게 파악할 수 있는 전문가는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았다.

정부는 금융공기업 기관장 임금의 경우 주요 통화정책을 결정하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 수준의 연봉(약 3억 원)을 기준 삼아 보수 책정 시스템을 마련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럴 경우 지난해 기준으로 산업은행 총재는 연봉이 3억∼4억 원 깎일 수도 있다.

그러나 오히려 실적이나 경영 평가에 비해 임금이 저평가된 공기업의 기관장은 현 임금을 유지하거나 오히려 더 받을 수도 있다고 정부 관계자는 밝혔다. 이 관계자는 “일부 공기업은 관련 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나 실적이 큰 편인데도 금융공기업에 비해 임금이 낮다는 지적도 있다”고 전했다.

공기업이라고 일방적으로 하는 일과 상관없이 보수를 깎지는 않겠다는 것이다.

이승헌 기자 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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