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속입법’에 제발목 잡힌 黨政

  • 입력 2005년 12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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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공무원법 개정안을 둘러싼 논란이 빚어진 것은 당정 간에 협의와 대응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정은 개정안이 열린우리당의 주도로 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할 때까지 법안의 문제점에 대해 충분한 의견 조율을 시도하지 않았다.

행정자치부와 기획예산처는 의원 입법이 이뤄지기 전에 열린 공청회에서 법안에 반대 의견을 냈지만 여당은 당론으로 법 개정을 추진했다. 결국 두 부처는 개정안의 국무회의 상정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총리실에서는 당초 이 법안을 20일 국무회의에서 의결, 공포할 예정이었으나 두 부처가 제동을 걸자 일단 상정을 27일로 미루고 추가 검토 작업을 벌여 왔다.

이해찬(李海瓚) 국무총리도 26일 총리실 간부회의에서 “의원들의 입법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당정 협의가 원활히 되지 않았다”고 당정 협의의 난맥상을 인정했다.

개정안을 발의했던 열린우리당 최규식(崔奎植) 의원은 청와대와 총리실에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가능성이 감지되자 김원기(金元基) 국회의장에게 ‘SOS’를 쳤고, 김 의장은 이병완(李炳浣) 대통령비서실장과 해법을 조율했다는 후문이다. 이 결과 나온 ‘개정안 공포 후 보완입법’이라는 노무현 대통령의 결정은 “거부권 행사가 아니다”라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청와대 측은 무엇보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열린우리당이 당론으로 추진한 법안을 뒤집었다는 비판 제기를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당-청(黨-靑) 간 갈등의 새로운 ‘불씨’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거부권 행사가 근속승진의 꿈에 부푼 경찰 공무원들의 반발을 살 가능성도 염두에 뒀을 수 있다. 경찰의 반발은 5개월 앞으로 다가온 내년 지방선거에 임하는 여권에 부담이다.

한편 청와대 일각에선 한나라당이 거부권 행사를 요구하고 있는 사학법 개정안과의 형평성 문제를 의식해 경찰공무원법 개정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를 접은 것 아니냐는 관측도 있다.

정연욱 기자 jyw11@donga.com

하태원 기자 taewon_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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