潘외교, 부적절하다더니… 닷새만에 바뀐 정부 對日외교

  • 입력 2005년 10월 25일 03시 1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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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통상부는 24일 반기문(潘基文·사진) 외교부 장관이 27일부터 29일까지 일본을 공식 방문해 마치무라 노부타카(町村信孝) 외상과 한일 외교장관 회담을 가질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외교부는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반 장관은 이번 기회에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에 대한 한국 정부의 분명한 입장을 밝히고 올바른 역사 인식과 이의 실천을 통해서만 한일관계가 미래지향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할 것”이라고 밝혔다.

외교부 당국자는 “반 장관이 고이즈미 총리의 신사 참배 직후 ‘일본을 방문하지 않겠다’고 한 발언을 왜 뒤집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관련 부처 간에 종합적으로 검토한 결과 외교 책임자들 간의 대화 채널을 열어놓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했다”며 “일본 국민에게 올바른 역사 인식 정립이 중요하다는 점을 직접 전달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는 중요한 외교적 입장을 불과 닷새 만에 180도 바꾼 경위에 대한 설명으로는 설득력이 약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청와대는 일주일 전만 해도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에 격분해 한일 정상회담을 재검토하겠다고 천명했다. 이어 반 장관은 19일 일본 기자들까지 참석한 내외신 정례 브리핑을 통해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 일본 방문을 추진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밝힌 바 있다.

이는 예정된 외교 일정이었던 양국 정상 및 외교장관 회담의 취소로 해석됐다. 한일 양국의 언론에도 비중 있게 다뤄졌다. 이에 대해 외교부 당국자는 “당시엔 신사 참배 직후여서 격앙된 분위기였고 관련 부처 간 종합적인 협의가 없었던 상황”이라고 해명했다.

일본의 사과 등 객관적인 상황 변화는 없지만 한일관계를 종합적으로 고려한 결과 반 장관이 일본을 방문하는 게 낫다는 결론을 내렸다는 얘기로 해석된다. 또한 반 장관의 19일 방일 거부 입장은 격분한 분위기 속에서 부처 간에 신중한 협의 없이 내놓은 발언이었다는 점을 자인하는 셈이기도 하다.

한편으로는 청와대가 한일 정상회담의 취소 문제까지 밝히면서 초강수로 대응한 마당에 장관급 대화 채널마저 닫을 경우 한일관계의 완전한 경색을 몰고 올 수 있다는 우려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6자회담을 앞두고 한일관계가 꽁꽁 얼어붙는 상황은 북한 핵문제의 해결을 위해 미국 일본과의 공조가 절실한 한국으로선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다음 달 부산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의식한 조치라는 해석도 있다. APEC 의장국인 한국이 손님인 고이즈미 총리와 단독회담을 피하는 것은 아무래도 모양새가 좋지 않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정부가 필수불가결한 외교적 교섭은 어쩔 수 없이 행하되 선택 가능한 외교 행위는 일본의 태도 변화가 없으면 하지 않기로 하고, 신사 참배자와 비(非)참배자를 가려 대접하겠다는 ‘투 트랙 외교’ 방침을 정한 것도 이 같은 외교 환경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외교에 있어서 필수와 선택을 가르는 기준이 뭔지, 일본 정치인들이 집단으로 신사 참배를 강행하는 상황에서 이들을 일일이 가려서 차등 대우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인지, 얼마나 실질적인 효과가 있을지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윤종구 기자 jkmas@donga.com

▼한국외교 사방이 '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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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최근 미국 일본 중국 등 주요 국가들과 외교적인 문제로 부딪치고 있다.

이들 국가는 모두 북한 핵 문제를 논의하는 6자회담의 주요 참가국으로 한반도 문제에 지대한 영향력을 갖고 있어 현안을 적절히 해결하지 못하면 국익에 심각한 손실을 불러올 가능성이 높다.

미국과는 북핵 문제를 협의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냉기류가 심상치 않은 수준이다. 대북 지원이나 경수로 제공 문제,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문제와 국방개혁안을 비롯한 군사현안 등 핵심적인 사안에서 한국이 미국과 사전 협의 없이 너무 앞서 가는 바람에 곤란해지고 있다는 것이 미국 측의 불만이다. 좀 더 근본적으로는 한미동맹을 바라보는 양국 간 인식의 괴리가 아직 정리되지 못한 측면이 있다.

중국은 ‘납 김치’ 파동에 이어 ‘기생충 김치’ 문제까지 불거지면서 한국 내에서 중국산 식품에 대한 안전성 문제가 제기된 것에 반발하고 있다. 중국은 한국에 대한 무역 보복을 고려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과는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가 마찰의 핵이다. 한일 양국은 독도 영유권 및 역사 왜곡 교과서 문제로 올해 초 심각한 외교적 마찰을 빚은 데 이어 이번에 신사 참배 문제로 인해 냉랭한 관계를 극복하기 어렵게 됐다.

한일 간 ‘3대 현안’으로 불리는 이들 문제가 올해 모두 외교적 마찰 요인으로 비화해 양국은 수교 이래 최악의 관계를 맞이했으나 어느 것 하나 해결될 기미조차 없는 게 현실이다.

이들 세 나라와 한꺼번에 갈등을 빚고 있는 이 같은 현실은 “외교 문제는 기대를 초과 달성하지 않았나 생각한다”던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최근 발언을 무색하게 만들고 있다.

윤종구 기자 jkma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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