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대통령 동기생 검찰총장, 용기가 필요하다

  • 입력 2005년 10월 25일 03시 1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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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이 정상명 대검 차장을 검찰총장으로 지명한 것을 사법시험 17회 동기생이라는 이유만으로 ‘코드 인사’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정 총장 내정자가 이 정부 출범 이후 법무부 차관, 대검 차장 등 요직에 중용된 것은 사실이지만 그가 검사로서 걸어온 길은 보수적인 검찰 본류(本流)에 가깝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2년 임기를 채운 송광수 전 총장과 6개월 만에 사표를 내고 물러난 김종빈 전 총장을 겪으면서 자신을 잘 이해하는 인물을 검찰총장에 앉히는 쪽으로 마음이 기운 것 같다. 대선자금 수사에서 송 전 총장과 팀을 이뤄 현직 대통령의 측근들을 사법처리한 안대희 서울고검장을 지명하지 않은 것은 ‘독립 검찰’의 존재를 버겁게 여기는 권력의 속성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는 해석을 낳는다. 사시 동기생 중에서도 대통령과 가까운 그룹의 일원이었던 정 내정자로서는 두 선배 총장처럼 꿋꿋하게 처신하기 어려운 부담도 있을 수 있다.

정 내정자는 ‘강정구 파동’ 과정에서 천정배 법무부 장관의 지휘권 발동을 무리라고 보면서도 법에 따른 권한 행사이므로 검찰총장이 이를 수용하고 직(職)을 유지하는 것이 순리라는 입장을 보였다. 그러나 김 전 총장이 끝내 사표를 내자 검찰총장 권한대행을 맡아 동요하는 검찰조직을 진정시키는 역할을 무난하게 수행했다고 청와대는 보는 것 같다. 이렇게 현실 감각으로 무장한 사람이 검찰총장으로서 검찰과 정치권력의 관계를 어떻게 끌고 갈지 주목된다.

차기 검찰총장은 정치권력의 코드나 권력자가 견강부회(牽强附會)하는 ‘시대정신’에 자신을 맞출 것이 아니라 헌법정신과 법률에 충직해야 한다. 대통령이나 법무부 장관의 기대를 잘 읽고 소화하는 데 그치면 실패한 검찰총장으로 남기 쉽다. 검찰이 정치적 중립을 확보하려면 총장이 앞으로도 몇 명 더 희생돼야 한다는 선배 총장들의 뼈아픈 말을 새겨들어야 한다. 정 내정자는 기자간담회에서 ‘균형감각’을 거듭 강조했지만 험난한 시대에는 균형감각 이상으로 용기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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