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박중현]‘남북기금 유용’ 통일부의 오리발

  • 입력 2005년 10월 4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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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 오후 6시경 기자는 통일부 홍보관리관의 전화를 받았다.

그는 본보가 현대그룹 내부감사 보고서를 입수해 특종 보도한 ‘김윤규 씨, 남북협력기금 유용’이란 제목의 A1면 머리기사가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동아일보 보도가 남북협력기금의 신뢰성에 상처를 준 만큼 언론중재위원회 회부는 물론이고 민형사상의 책임을 묻겠다”는 위협성 발언까지 했다. 비슷한 시간 취재팀의 다른 기자도 같은 전화를 받았다.

통일부는 또 “남북협력기금을 통일부가 관리하지만 한국관광공사 등을 통해 지원했지 현대아산에 직접 지원한 바 없으므로 동아일보 보도는 사실무근”이라는 해명 자료를 냈다.

남북협력기금이 ‘간접적’으로 현대아산에 갔으니 그 돈은 남북협력기금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이런 논리라면 외환위기 이후 예금보험공사 등을 통해 금융회사와 부실 기업에 제공된 공적자금은 ‘공적자금’이 아닌 모양이다.

다음날인 1일 본보는 ‘김윤규 비자금 중 남북경협기금(남북협력기금 의미) 관련 금액이 50만 달러’라는 감사보고서 내용을 보고서 사본 사진과 함께 추가로 보도했다.

현대그룹은 본보 보도가 감사보고서와 일치한다고 인정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통일부는 “현대 측에 감사보고서 및 관련 자료 제출을 요구했다”며 한발 물러섰다.

통일부는 본보가 8월 8일 김 부회장의 개인비리 혐의를 처음 보도했을 때도 진상 파악보다는 보도 내용에만 촉각을 곤두세웠다. 당시 통일부 홍보관리관은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혹시 김윤규 관련해 저희 장관님 이름이 보도되느냐”고 묻는 ‘과민 반응’을 보였다.

남북협력기금은 국민의 세금으로 조성된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통일부는 ‘민형사상 책임’을 들먹이며 언론을 위협하기에 앞서 진상 파악부터 해야 했다. 이런 본연의 일을 소홀히 한 채 후속 보도를 막는 데만 온갖 신경을 쓰는 인상이었다.

통일부는 ‘김윤규 비리’에 관한 한 이미 신뢰를 잃었다. 자칫 김 씨를 감싸고 있다는 의심까지 받을 수 있는 상황이다.

이번 파문과 관련해 감사원 특감이나 검찰 수사 등 더욱 공정한 조사가 필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박중현 경제부 sanju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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