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박범진]486 ‘새출발’에 기대크다

  • 입력 2004년 11월 28일 19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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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인 출신의 친구가 하나 있다. 그는 신문사 재직 시절 중국의 문화혁명을 적극적으로 지지했었다. 10년간 계속된 문혁이 중국에 심대한 타격을 가져온 대재앙이었던 것으로 결론이 난 뒤에도 문혁을 총지휘한 마오쩌둥(毛澤東)에 대한 그의 존경심은 조금도 변하지 않은 듯이 보였다. 그러던 그가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것을 보고 더 이상 거짓말을 쓸 수 없다며 신문사를 그만두었다. 1960, 70년대 좌파는 1990년대 초 소련을 비롯한 동구의 공산권이 무너지는 것을 보고 자신들이 가졌던 사회주의에 대한 이상이 그릇된 환상이었음을 깨닫고 대부분 조용히 자신의 생각을 바꾸었다.

▼자기성찰 계기된 ‘북한의 실패’▼

6·25전쟁 후 한동안 우리 사회는 이념적으로 무균상태나 다름없었다. 이른바 친북좌파의 싹이 움트기 시작한 것은 4·19학생혁명 이후다. 대학 캠퍼스에 김일성 수령 추종자로 자처하는 학생이 자랑스럽게 활보하기도 했고, 마르크스의 ‘공산당선언’이나 레닌의 ‘제국주의론’과 ‘국가와 혁명’, 마오쩌둥의 ‘모순론’과 ‘실천론’을 몰래 돌려보기도 했다. 이렇게 태동한 친북좌파 세력의 일부는 1960년대의 ‘통일혁명당’과 1970년대의 ‘남조선민족해방전선’에 가담하기도 했다.

1980년 광주에서의 유혈참사를 가져온 5·17군사쿠데타는 친북좌파 세력을 폭발적으로 길러낸 결정적 계기가 됐다. 이른바 주사파로 불리는 친북좌파 세력이 학생운동의 주류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이들을 386세대(30대, 80년대 대학 입학, 60년대 출생)라고 부르고 있다. 1960, 70년대 좌파들이 공산권의 붕괴를 보고 대부분 사상적 전환을 한 반면에 이들 주사파는 완고하게 자신들의 신념을 견지하려고 몸부림쳤다. 어떻게 보면 지적 지진아와 같았다.

이들 주사파에게 자기성찰의 전환점이 온 것은 1993년 이후 식량난으로 인해 북한 주민 수백만명이 굶어죽는 등 북한의 비참한 실상이 세계에 알려지면서부터다. 백성에게 밥도 제대로 먹이지 못하고 굶겨 죽이는 정권은 이미 존재가치를 상실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주사파의 맏형 격인 81, 82학번 세대는 이제 40대 초반에 접어들어 ‘486’이 되었다. 이 486세대를 중심으로 자신들의 지난날을 겸허하게 되돌아보고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긍정적으로 계승 발전시켜 나가려는 새로운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은 지극히 고무적인 일이다.

이들이 중심이 되어 자유주의와 시장경제, 그리고 법치주의를 기본이념으로 선진 한국 건설을 지향하는 ‘자유주의연대’가 결성된 것은 국민에게 새로운 희망의 메시지를 보내주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자유주의연대’ 창립을 기념하여 열린 토론회에서 발표자와 토론자들이 주사파로서의 자신들의 과거를 솔직히 고백하고 새로운 각오를 다짐하는 모습은 감동적이었다.

▼아직도 미련 두면 지성의 빈곤▼

우리의 친북좌파 세력은 역사적 상황의 산물이다. 한때 남쪽의 권위주의 체제 등에 실망한 나머지 북쪽에 유혹을 느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상황이 바뀌면 생각도 바뀌는 것이 자연스러운 흐름일 것이다. 486세대의 새로운 각성은 한반도 상황의 새로운 변화를 반영한 것이라고 봐야 한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전향자는 기독교의 사도 바울이다. 바울은 한때 기독교를 박해하던 인물이었으나 그리스도의 음성을 듣고 기독교인이 되어 30년간 세계에 기독교를 전파하는 위대한 사도가 되었다.

공산주의의 역사적 실험은 실패로 끝났다. 북한도 예외가 아니다. 북한이 체제유지를 고집하는 한 경제위기는 결코 극복될 수 없다. 공산주의가 무너진 가장 큰 원인은 저생산성에 있다. 1990년대 후반 이후 탈북자들이 잇따르는 것이 북한의 실패를 증명해 준다. 그런 북한에 아직도 미련을 갖는 것은 지성의 빈곤으로 봐야 한다.

박범진 건국대 초빙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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