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부형권/‘대국민 외교’에 발목잡힌 외교부

  • 입력 2004년 8월 26일 19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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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서도 인기 좋은 축구선수 안정환씨를 대북 외교사절로 활용하면 어떨까요.”

외교통상부 홈페이지(www.mofat.go.kr)엔 매일 네티즌들의 소박한 질문이나 제안이 10∼30건 접수된다. 외교부는 이에 대응해 관련부서의 의견을 빠르게 취합해 답변해 주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참여정부 출범 이후 강조돼 온 ‘대국민 외교(public diplomacy)’의 한 예다.

외교부가 20∼30명이었던 출입기자단을 없애고 모든 내외신에 외교부의 문턱을 낮춘 개방형 브리핑 제도를 도입한 논거도 ‘국민’과 ‘외교당국’간의 벽을 낮추겠다는 것이었다. 그 결과 26일 현재 외교부에 출입 등록된 언론사는 84개, 출입기자는 140명에 이른다.

그러나 이런 ‘대국민 외교’ 시스템이 요즘 외교부의 주요 고민거리로 떠올랐다. 국민과 함께 실시간으로 정보를 공유하기에는 민감한 외교 현안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외교 현안에 대해 언론 보도 자제를 요청하는 ‘엠바고’ 제도도 사실상 작동하지 않는다. 개방형 브리핑제가 많은 언론사간의 치열한 무한경쟁 체제를 불러와 외교부의 ‘엠바고’ 요청이 먹히지 않기 때문이다.

그 폐해는 여기저기서 드러나고 있다. 지난달 말 국내에 입국한 탈북자 468명이 머물렀던 한 동남아 국가는 요즘 “한국 정부가 비공개 약속을 어겼다”며 탈북자 문제에 대한 협조를 일절 거부할 정도로 화가 났다.

중국도 한국 언론에 ‘우다웨이(武大偉) 중국 외교부 아시아담당 부부장(차관)의 극비 방한(22일)’이 보도되자 한국 정부에 협박에 가까운 항의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외교부 관계자는 “외교부는 일반 국내 부처와 달리 다른 국가를 상대해야 한다. 대(對)언론 시스템을 바꿀 때도 이런 특성이 감안된 보완 장치가 있어야 했다”고 아쉬워했다.

‘국민 외교’에 힘쓰자니 상대국이 반발하고, 상대국의 비공개 요청을 수용하자니 ‘대국민 외교’의 원칙을 무너뜨릴 수밖에 없는 딜레마는 당초 외교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고 대언론 시스템을 바꾼 외교부가 자초한 셈이다.

부형권 정치부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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