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신임 결심의 결정적 배경인 ‘SK비자금’ 수사를 지휘하고 있는 안대희(安大熙·검사장) 대검 중앙수사부장은 이날 오후 예정된 수사 브리핑을 갑자기 취소했다. 안 검사장은 노 대통령 발언에 대한 코멘트를 요청하자 “수사 중인 사안인데 무슨 할 말이 있느냐”며 아예 입을 다물었다.
이 두 사람은 그동안 정치권을 향한 대형사건의 수사를 총지휘해 온 주인공. 검찰 수사가 ‘대통령의 재신임 결심’이라는 초유의 상황으로 이어지자 이 두 사람이 뉴스의 초점이 되고 있다.
두 사람은 몇 개월 전 비자금 수사에서 불거져 나온 여야 대선자금 수사에 착수하면서 ‘비장한 각오’를 다졌던 것으로 전해졌다.
처음으로 국회청문회를 거친 송 총장은 주변인사들에게 “임기(2년)에 연연하지 않고 검찰의 위상을 회복시키겠다”는 뜻을 나타낸 것으로 알려졌다. 안 부장도 “자리와 평생을 지켜온 검사로서의 명예를 걸고 대선자금 수사에 임하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안 부장은 지난 정권 동안 한직에 있다가 노무현 정권 출범 이후인 올 3월 중수부장으로 부임한 인물. 그에 대해서는 사법시험 17회 동기인 노 대통령도 능력을 평가했다는 후문이다.
‘송-안 체제’의 권력에 대한 수사 의지는 나라종금 로비의혹사건, 현대비자금사건, 굿모닝시티 분양비리사건 등 대형사건 수사를 통해 확인돼 왔다. ‘송-안 체제’는 권력핵심에 대한 수사를 회피하면 실추된 검찰의 위상을 영원히 회복하기 어렵다는 판단 아래 일선 검찰청에도 “지위 고하를 가리지 말고 철저히 수사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 결과 여당 대표였던 정대철(鄭大哲) 의원이나 노 대통령의 측근인 염동연(廉東淵) 민주당 인사위원과 안희정(安熙正)씨 등에 대한 구속영장이 잇따라 청구됐다.
그러나 이 같은 과정이 순탄치는 않았다. 정치권은 여야를 막론하고 끊임없이 ‘흔들기’를 계속했다. 청와대의 시선도 곱지 않았다. 더욱이 ‘검찰 공화국’이라는 여론이 조성되면서 검찰에 대한 감찰권의 분리 등 견제 움직임도 본격화됐다. 노 대통령은 SK비자금 수사가 본궤도에 오른 8월 “누구의 감독도 받지 않는 검찰을 내버려두지 않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송 총장과 안 부장은 정치권의 거센 압력이 느껴질 때마다 서로 격려하며 “원칙과 정도를 벗어나지 말자”고 거듭 다짐했다는 전언이다.
안 부장은 9일 최병렬(崔秉烈) 한나라당 대표가 자신을 ‘대한민국의 최고 실세’라고 평가한 데 대해 “옛날에는 실세라고 하면 되는 것을 안 되게 하고 안 되는 것을 되게 하는 것이었는데, 이제는 권력은 없고 의무만 남았다”며 괴로운 심경을 드러내기도 했다.
한편 노 대통령의 발표 직후 검찰은 충격에 휩싸인 채 검찰의 수사와 위상에 미칠 영향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검찰 수뇌부는 긴급 회동을 갖고 앞으로의 대책과 검찰 입장을 논의하는 등 긴박하게 움직였다.
서울지검의 한 간부는 “대통령이 승부수를 던진 것 같다”고 말했다.
일부 평검사들은 “대통령이 측근을 내리치면서 재신임을 받겠다고 한 것은 야당의 대선자금도 철저하게 파헤치라는 무언의 압력이 될 수 있고, 대통령이 부담을 털고 나면 권력 핵심층이 검찰 수사와 조직을 뒤흔들 가능성도 있다”며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
정위용기자 viyonz@donga.com
이태훈기자 jeff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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