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 철수 小史]닉슨때 2만명-카터때 3000명 감축

  • 입력 2002년 12월 30일 18시 54분


1945년 9월 미군이 진주한 이래 미군 철수는 공식적으로 세 차례 추진됐다.

첫 미군 철수는 한반도를 미국의 방위선에서 제외시키는 ‘애치슨라인’에 따라 1949년 6월에 이뤄졌으나 한국전쟁으로 미군은 다시 들어왔다.

한국전쟁 이후 첫 철군 움직임은 1969년 7월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닉슨 독트린’을 발표하면서부터.

미국은 1970년 8월 5년 내에 주한미군 전 병력을 철수시킨다는 방침에 따라 이듬해 3월부터 주한미군 6만1000명 중 2만명을 철수시켰다.

그러나 미 행정부 및 의회를 상대로 한 한국 정부의 철군 반대 로비가 활발히 전개됐고 이 과정에서 박동선(朴東宣)씨가 개입된 ‘코리아 게이트’가 터졌다.

이어 지미 카터 대통령은 1977년 1월 취임하자마자 미 지상군 철수 계획을 세워 실행했다.

당시 카터 행정부의 계획은 4년간 3단계에 걸쳐 1982년 중반까지 병력 철수를 마무리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철군계획은 한국 정부는 물론 미 군부 및 공화당의 강력한 반대로 사실상 철회됐고, 1981년 한미 정상회담에서 공식 종결됐다.

카터 대통령 재임기간에 실제로 철군한 미군은 3000여명. 대신 12대 이상의 F-4 전투기와 전투기 요원 등 900명이 한국에 재배치됐다.

또 1980년대 후반 들어 한반도 주변 안보상황이 크게 변화하고, 미국의 무역·재정적자가 심화되면서 미국 내에서 주한미군 감축 및 역할조정, 방위비 분담문제가 제기됐다.

이에 따라 조지 부시 대통령 때인 1989년 8월 미 의회에서 넌-워너 수정안을 채택했고, 주한미군 감축 및 역할조정안에 따라 1단계로 1992년 말까지 지상군·공군 총 6987명이 감축됐다. 그러나 1993년부터 추진키로 했던 2단계 감축은 북한 핵 문제로 유보됐으며, 그 후 지상군 철수 문제는 미국 정부와 정치권에서 공식 거론되지 않았다.

지미 카터 행정부 당시 주한미군 철수 추진 일지
1977년주한미군 감축 공약을 내건 민주당 카터 후보, 미국 39대 대통령에 당선
1977년 3월카터 대통령, 기자회견에서 향후 4∼5년간 주한 미지상군 철수계획 발표
1977년 5월검토각서(PRM)에서 1982년까지 주한미군 3단계 철수안 구체화
1977년 7월제10차 한미 연례안보협의회에서 주한미군 철수안 한국정부에 공식 통보
1978년 4월카터 대통령, 주한 미 지상군 철수 대상을 6000명에서 3400명으로 축소
1978년 11월주한미군 3000명 감축
1979년 2월미국 의회와 군부의 반발로 철군계획 잠정중단
1979년 7월 1일한미 정상회담(서울)에서 주한미군 계속 주둔 언명, 3자회담 제의
1979년 7월 20일카터 대통령, 주한 미 지상군 철수 문제를 1981년에 재검토하기로 발표
1981년미국 로널드 레이건 40대 대통령 취임
1981년 2월한미 정상회담에서 주한미군 철수 백지화, 안보공약 강화 합의

이기홍기자 seche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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