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미군 철수는 한반도를 미국의 방위선에서 제외시키는 ‘애치슨라인’에 따라 1949년 6월에 이뤄졌으나 한국전쟁으로 미군은 다시 들어왔다.
한국전쟁 이후 첫 철군 움직임은 1969년 7월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닉슨 독트린’을 발표하면서부터.
미국은 1970년 8월 5년 내에 주한미군 전 병력을 철수시킨다는 방침에 따라 이듬해 3월부터 주한미군 6만1000명 중 2만명을 철수시켰다.
그러나 미 행정부 및 의회를 상대로 한 한국 정부의 철군 반대 로비가 활발히 전개됐고 이 과정에서 박동선(朴東宣)씨가 개입된 ‘코리아 게이트’가 터졌다.
이어 지미 카터 대통령은 1977년 1월 취임하자마자 미 지상군 철수 계획을 세워 실행했다.
당시 카터 행정부의 계획은 4년간 3단계에 걸쳐 1982년 중반까지 병력 철수를 마무리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철군계획은 한국 정부는 물론 미 군부 및 공화당의 강력한 반대로 사실상 철회됐고, 1981년 한미 정상회담에서 공식 종결됐다.
카터 대통령 재임기간에 실제로 철군한 미군은 3000여명. 대신 12대 이상의 F-4 전투기와 전투기 요원 등 900명이 한국에 재배치됐다.
또 1980년대 후반 들어 한반도 주변 안보상황이 크게 변화하고, 미국의 무역·재정적자가 심화되면서 미국 내에서 주한미군 감축 및 역할조정, 방위비 분담문제가 제기됐다.
이에 따라 조지 부시 대통령 때인 1989년 8월 미 의회에서 넌-워너 수정안을 채택했고, 주한미군 감축 및 역할조정안에 따라 1단계로 1992년 말까지 지상군·공군 총 6987명이 감축됐다. 그러나 1993년부터 추진키로 했던 2단계 감축은 북한 핵 문제로 유보됐으며, 그 후 지상군 철수 문제는 미국 정부와 정치권에서 공식 거론되지 않았다.
지미 카터 행정부 당시 주한미군 철수 추진 일지 | |
1977년 | 주한미군 감축 공약을 내건 민주당 카터 후보, 미국 39대 대통령에 당선 |
1977년 3월 | 카터 대통령, 기자회견에서 향후 4∼5년간 주한 미지상군 철수계획 발표 |
1977년 5월 | 검토각서(PRM)에서 1982년까지 주한미군 3단계 철수안 구체화 |
1977년 7월 | 제10차 한미 연례안보협의회에서 주한미군 철수안 한국정부에 공식 통보 |
1978년 4월 | 카터 대통령, 주한 미 지상군 철수 대상을 6000명에서 3400명으로 축소 |
1978년 11월 | 주한미군 3000명 감축 |
1979년 2월 | 미국 의회와 군부의 반발로 철군계획 잠정중단 |
1979년 7월 1일 | 한미 정상회담(서울)에서 주한미군 계속 주둔 언명, 3자회담 제의 |
1979년 7월 20일 | 카터 대통령, 주한 미 지상군 철수 문제를 1981년에 재검토하기로 발표 |
1981년 | 미국 로널드 레이건 40대 대통령 취임 |
1981년 2월 | 한미 정상회담에서 주한미군 철수 백지화, 안보공약 강화 합의 |
이기홍기자 sechep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