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 이란인 난민신청자 자술서 오역 강제송환

  • 입력 2001년 11월 7일 06시 06분


법무부가 국내 체류를 원하는 이란인 난민 신청자의 자술서를 ‘출국하고 싶다’는 뜻으로 반대로 번역해 강제 출국시켰다며 유엔난민기구가 정부에 항의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 서울지부에 따르면 법무부는 10월 초 출입국관리사무소에 수용보호 명목으로 구금돼 있던 이란인이 ‘본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내용의 자술서를 써냈다며 그를 이란으로 돌려보냈다. 법무부는 그 근거로 이란어(페르시아어)로 된 자술서 원문과 한글 번역문을 제시했다고 UNHCR는 밝혔다.

그러나 이 이란인은 강제송환 직전 친구를 통해 UNHCR에 부당함을 호소했고 UNHCR가 이란어 전문가를 통해 자술서 원문을 다시 번역한 결과 자술서는 ‘출국을 원하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는 것.

법무부가 이란어로 쓰인 자술서를 실수로 잘못 번역한 것인지, 아니면 자술서 내용과 상관없이 다른 사유로 강제출국시킨 것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제임스 코바르 UNHCR 서울지부장은 “이 사실을 확인하고 한국 정부에 항의하자 한국 정부는 ‘그런 실수가 있었는지 몰랐다’며 충격과 놀라움을 표시했다”고 말했다.

코바르 지부장은 “한국 정부가 고의로 진술서를 왜곡한 것 같지는 않지만 통역인이 진술서를 제대로 번역해낼 능력이 부족했다면 심각한 문제”라고 말했다.

코바르 지부장은 “문제가 된 난민신청자 외에도 출입국관리사무소에 구금돼 있는 외국인 난민신청자들이 통역인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기회도 거의 없어 의사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법무부 관계자는 “이란인 문제를 보고 받은 일이 없다”고 말했다.

UNHCR측은 또 한국 정부가 9월11일 미국에 대한 테러공격 이후 난민신청자를 불법체류 등의 이유로 구금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UNHCR 관계자는 “아랍계 등 특정국가 국민이나 소수민족만을 상대로 기간을 특정하지 않고 무한정 구금해 놓는 경우가 늘고 있다”며 “합법적인 구금절차일지는 모르지만 이는 부당한 인권침해와 인종차별 등의 문제를 야기할 수 있어 한국 정부에 개선을 촉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은 7일 기자회견을 열어 이런 문제를 지적하고 법무부와 외교통상부에 개선을촉구할예정이다. 민변의 한 변호사는 “출국의사가 없는 이란인의 자술서를 반대로 번역해 출국시킨 어처구니없는 사건을 포함해 최근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소수민족에 대한 부당 대우는 국제 인권과 외교 차원에서 심각한 문제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정은기자>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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