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상봉]N세대가 보는 '만남'/"가족이란 이런건가요"

  • 입력 2000년 8월 16일 18시 56분


“외아들이니 집에서 떠받들어주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요. 남북이산가족의 상봉을 전하는 TV에서 본 네줄기 굵은 눈물이 생각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부모형제의 소식도 모른 채 50년을 떨어져 산다면 얼마나 끔찍할까요. 사랑해요 부모님, 누나들!”

이산가족의 사연들이 ‘개인주의적이고’ ‘독거성(獨居性)’으로 알려져온 n세대 사이에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네티즌들은 ‘가족의 고귀함’을 일깨워주는 계기가 되었다고 털어놓는다. 남북의 만남은 우리 사회의 세대간, 가족간에 파여 있는 골을 메우는 ‘부수효과’를 낳을 수 있을까.

▼세대간 가족간 화해 계기▼

“남북은 화해 중이지만 저는 부모님과 냉전 중이었어요. 알아보지도 못하는 부모님 앞에서 큰절을 올리는 아들의 모습을 보았지요. 곰곰 생각해보니 일방적이고 때로 명령조인 부모님의 이런저런 말씀도 이해할 만했어요.”(김수연·50098@hanmail.net)

“유학생활로 부모님과 2년간 헤어져 있었습니다. 내 문제를 진심으로 상의해 줄 가족이 그리웠어요. 하물며 50년간이나….” (서동인·dongse5@hanmail.net)

개그맨 남희석씨는 이번 상봉을 지켜본 소감을 동아일보에 보내왔다. 남씨는 “충남 고향에 계시는 아버님이 맨 먼저 보고 싶어졌다”고 했다. 그는 “웅변대회에서 1등을 했을 때 아버님이 빨간 앵두 한 움큼을 건네주셨는데 체온으로 따뜻해진 그 앵두는 지금도 내게 큰 힘이다”면서 ‘빨간 앵두의 추억’을 적었다. 그는 또 “그 무서웠던 회초리로 정신이 번쩍 들게 때려줄 수 있는 아버님이 계신다는 사실이 너무 고맙다”고 끝맺었다.

▼"살아계신 아버님께 감사"▼

이번 사건을 ‘무표정하게’ 바라보는 젊은이들도 있다. 이들은 대체로 유복한 환경에서 자라면서 개인주의적 성향을 띠고 있다.

고교생 이모군(16)은 “솔직히 똑같은 장면과 사연이 반복돼 시끄러웠다”면서 “50년 만에 만났다니 그 반가움이 어땠을까를 논리적으로 생각했고 우리 가족이 헤어질 경우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정도를 생각했다”고 말했다. 주부 민모씨(42)는 “초등학생 아이가 상봉가족이 우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면서 “이산가족이 만나는 장소에 따라나온 어린이들이 멀뚱멍뚱하게 서 있는 모습을 보면서 아이에게 가족의 소중함과 효의 가치를 어떻게 심어줄까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새로운 '가족의 가치' 눈떠▼

수원대 이주향(李柱香·철학)교수는 “결핍을 모르고 자란 n세대는 독립을 꿈꿔왔지만 그 독립도 가족의 애정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인위적인 찢어짐을 겪어야 했던 세대를 접하면서 ‘독립’의 소망과 배치되지 않는 가족의 가치에 새로 눈뜨고 있다”고 분석했다.

한편 윤리문제 전문가들은 이번 상봉을 ‘효 중흥’의 계기로 보면서도 오히려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다. 김태길(金泰吉·윤리학) 서울대명예교수는 “젊은 사람들이 효를 어떻게 생각할지는 모르겠다”면서 “늙은이들이 나서서 이야기하기보다는 젊은이들이 효란 부모와 자식이 서로 잘하는 ‘부자유친(父子有親)’에서 나온 것임을 스스로 느끼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허엽·유윤종·김형찬기자>h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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